엄마라는 뜨거운 이름으로 살기.
긴밀한 화장실 연대, 우리.
울음이 목에 걸려 내 반응을 살핀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정리할 수 있는 생각조차 없었다.
잘자던 아이는 새벽마다 깨어 서너 시간을 울어대며 내 혈관 곳곳에 짜증을 심어 놓았다. 잘 먹지도 않았다. 며칠을 연거푸 그랬다. 나는 매듭이 마구 엉켜버린 실타래를 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풀기를 거부하고 던져버리고 싶었다. 이쯤 되니 생각이란 것을 도무지 할 수 없는 곳에서 나 홀로 표류하는 것만 같았다.
내 생각 속의 나는 잔다르크라도 되는 듯이 용맹했건만, 현실에선 나무칼 한 자루도 휘두르지 못했다. 어떤 날은 희망에 차서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었다가도, 이처럼 현실에서 거세게 탈곡되고 나면 바람이 빠져 쪼그라든 풍선처럼 한없이 초라했다.
숨 쉴 구멍이라곤 아이들의 등원 후 잠시 주어지는 오전의 몇 시간뿐이었다. 그나마도 일상의 여과물을 치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체력의 벽은 쉽게 허물어져 생각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도 마무리되지 못한 생각들은 눈치 없이 피어올랐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것만이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 없이 사는 게 오히려 덜 잔인할지 모를 일이었다. 무기력으로 나를 이끈 다정한 본능에 나는 고마워해야 했다. 줄을 놓아버린 것도 내 몸이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일 것이었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있던 나를 무너뜨려야만 하는 것을, 나는 또 잊고 있었다. 애초에 몰랐던 것처럼, 하나씩 무너져가는 나를 바라보면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흩어진 지푸라기를 다시 주워 모은다. 가만히 있거나 흩어진 지푸라기를 모으는 것, 이 두 가지 말고는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오늘까지만 살게 아니라면, 나는 이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모아야 했다.
이 시간을 온몸에 구멍 난 채로 지나온 나와, 거슬림 없는 정돈된 공간을 마련하는 나 중 어떤 것이 진짜였을까. 지금 목 놓아 엉엉 울지 못하면 후에라도 내가 불덩이를 삼켜내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나를 책상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이 남기고 간 흔적과 함께 책상에 앉았다.
나는 써야 했다. 다른 생각은 필요 없었다. 아이 키우는 일에 눈물이 나 쏙 뺀다는 스스로에 대한 힐난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그래 맞아. 나 지금 너무 뜨거워, 하고 되뇌어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기 위해선 허망하게 날아가버린 어제의 밤도 형상화시켜야만 했다. 별것도 아닌 내 하루에 누군가 입꼬리를 힘없이 쳐내리며 살짝 고개만 끄덕여도 만족이었다.
내가 어떤 존재로 지어졌는지 생각이, 드디어 들었다. 내가 만들어진 이유, 남들보다 감각이 괴로울 만큼 발달한 이유. 어젯밤 오롯이 나만의 것이었던, 내 몸을 꽉 채운 아이의 울음. 마치 전생이라도 되는 듯한 나로 살던 시간들. 겨우 한 발짝 건너왔을 뿐인데 억겁의 시간을 건너온 듯이 기억마저 흐릿해져 버린 여러 모습의 ‘나’들.
커다란 위로를 해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냥 나도 그렇다는 걸, 우리가 이렇게 숨죽여 겨우 화장실에서나마 한숨 돌려가며 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가 별 것 아닌, 누구나 해내는 ‘키워내는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지 앞에서 압도되는지, 그 책임감에 얼마나 허우적대는지 말하고 싶었다.
시간에 쫓겨 이리저리 던져 놓은 아이의 옷가지를 보며, 누군가를 생각한다. 어디선가 동동거리며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더 다정하려고 안간힘 쓰는 나에게 말하려 한다.
누구나 울대를 누르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
입력값과 출력값은 늘 같지 않으며 같을 수도 없다는 것,
아이가 짊어지고 갈 짐과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은 다르다는 것을.
그러니 오늘은 장난감과 아이들 옷가지 틈에서 가만 누워있어도 괜찮다.
천장도 위로해 줄 거다. 다 봤으니까.
오늘은, 그렇게만 살아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