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와 아이와 김치와 나

by 조수연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더라도 괜찮아요.


최근 며칠간의 기온이나 날씨가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호되게 감기를 앓고 있다. 벌써 2주나 되었는데도 차도는 보이지 않고 온 식구가 처참한 꼴이다. 온몸이 쑤시고 오싹하게 한기가 도는데도 아이들이 아플 때엔 명함도 못 내미는 게 부모인가 보다. 아이들이 촌각을 다투며 울어대는 통에 미간에 내 천 자는 쉴 틈 없이 존재를 드러낸다.


아이들 챙기느라 지쳐서 챙겨 먹지 못한 끼니가 줄을 섰는데 불쑥, 아이는 사랑이 아니라 체력으로 키우는 거라고 언젠가 들은 말이 떠올랐다. 지금 내 아이의 실정을 대변하는 듯해서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코 끝이 시큰해졌다. 뭘 먹긴 해야겠는데, 입맛은 없고 냉장고 사정도 초라했다. 반찬은 고사하고 김치마저 똑 떨어졌으니, 그야말로 비상사태였다.


그런데 아이가 자다 깨서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한 시간을 울었다. 아이를 안아 달래려고 갖은 애를 써봐도 아이는 좀처럼 진정되질 않았다. 안아주면 밀쳐내고, 내려놓으면 안으라고 방이 울릴 만큼 악을 써댔다.


나는 그런 아이를 부둥켜안고 등을 쓰다듬으며 작은 소리로 닿지도 않을 이야기를 해댄다.

몸이 힘들어서 그래,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괜찮아, 괜찮아.

수없이 반복한 그 소리는 뜻밖에도 아이에게 닿지 않고 나에게 닿았다. 2주간 애를 써가며 부여잡아 왔던 슬픔이, 둑이 터져 물바다가 되고 만 것이다. 아이를 안고 뜨거운 눈물을 소리 없이 흘리며 나에게도 아파서 그래, 괜찮아, 괜찮아 이야기해 주었다.


양가 가족들에게서 먼 길을 떠나오며,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어떤 것도 아쉬워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쉬울 것 하나 없었다. 그러나 우연찮게 이웃으로부터 건네받은 김치 한 통이 발단이 되었다. 향수를 자극했는지, 몸이 약해져 마음도 약해진 것인지, 그건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지금 이렇게 지쳤고 힘들다는 것, 어디에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오롯이 내가 버티고 버텨봤지만 고작 2주 만에 바닥이 났다는 것, 그것이 이렇게나 뜨겁게 방을 메우고 있는 것이었다.


김치 한 통이 내 마음의 맨살을 보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과연 김치다웠다. 매콤하게 톡 쏘고 들어온 그 마음은, 이미 그걸로 충분했다.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내왔던 내가 사실은 애써 버티고 있었다는 걸 알게 해 줬으니까.


놀랍게도 아이는 한 시간을 울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다. 나도 더는 눈물을 훔칠 필요가 없었다. 그래, 현실은 안 괜찮아도 괜찮다. 내가 내 마음 알아준 것만으로도 괜찮다. 별 볼일 없지만 최선을 다해 지나온 하루였다. 이 정도면, 통과다. 오늘도 이만하면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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