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에서 수용으로.
기질의 차이, 수용으로 가는 길목에서.
덮어두고 싶었던 나의 약점이 불쑥 고개를 내밀며, 내게 괜찮은지 묻는다.
오늘도 허탈히 수포로 돌아간 계획들을 바라본다. 오로지 본능으로 똘똘 뭉친 그들 앞에서는 감히 플랜 A, B, C도 의미가 없다.
철저한 계획만이 나의 불안을 없애는 유일한 기제였던 그때를 떠올린다. 나의 불안은 나를 초계획적인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 방식은 꽤 효과적으로 불안을 잠재우는 데 기여해 왔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면서, 계획이란 파도 앞의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시때때로 느낀다. 아무리 고단수로 전략을 짜보아도 서로에게 상호작용 하는 쌍둥이라는 변수는 내 설계에 상당히 어려운 함수로 작용한다. 예상치도 못했던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감정이 증폭되어 가는 것을 바라볼 때, 나는 이번 전략도 허사였음을 예감한다. 이전의 훌륭한 계획 속, 오만했던 나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아이는 고유한 개체인 동시에 가족사의 파편 집합체다. 인디언 보조개, 낯익은 표정, 익숙한 걸음걸이는 아이를 형성하는 곳곳에 담겨있다.
이 작은 요소들이 모여 아이라는 새로운 존재를 이루었다. 그러면서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도 만들었다. 그들을 바라보면 마치 살아있는 역사책이라도 보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마치 교차와 통합이 미리 조율된 듯, 유전의 신비는 두 아이에게 고르게 흡수되어 있었다. 아이의 행동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던 남편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에 탁월한 교제가 되어주기도 했다.
아이들의 특성은 도미노를 연상케도 했다. 하나씩 잘 쌓아진 블록들이 무너지며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그 안에 있었다.
블록들이 선을 이루며 무너질 때, 드러난 것은 아이들의 진실만이 아니었다. 내 안에 쌓아두었던 어떤 조각들도 존재를 드러냈다.
그 조각을 들어, 내 형질을 이리저리 유심히 살펴본다. 조각에서 담쌓고 살아온 세월이 보였다. 나의 불안이 얼마나 많은 것을 판단하게 했는지 조금 더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불안을 통제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계획이 필수였다. 판단이 서야만 전략을 짤 수 있었기에, 판단은 내게 생존을 위한 전제였다. 이렇게 생존법으로부터 기인한 삶의 방식은, 달팽이가 기어간 자리에 남겨진 흔적처럼 내 삶에도 자취를 남기고 있었다.
나는 누구라도 안전지대 이상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견고히 담을 쌓아두었다. 이 거리감은 처음엔 자신을 위한 타인 경계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모습을 바꾸더니 이내는 미움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미움의 길은 쉽게 터졌다.
쌍둥이 육아는 이런 내게 세상이라도 떠맡겨놓은 듯이 큰 숙제를 부여한 느낌이었다.
무심코 내 형제들이 떠올랐다. 나와는 너무 다른 성격을 가진 나의 언니, 그리고 남동생. 오랫동안 유예되었던 이해가 아이들을 통해 조금씩 해석되기 시작했다. '이해'라는 말조차 미안할 만큼, 그들 역시 고유한 기질로 살아왔을 것임은 분명했다.
그제야, 그들 안에도 담겨있을 이 유전의 신비를 조용히 떠올려본다. 그들 안의 여린 씨앗이, 무른 촉감으로 전해질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그 삶에 깃든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나 하나 이해하기도 삶이 벅차 미뤄두었던 나의 오랜 숙제들. 아이들은 내게 모두를 사랑의 눈으로 보기를 촉구했다.
같은 뱃속, 같은 환경, 같은 시간을 공유한 일란성쌍둥이. 같음을 나눈 아이들의 다름을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것.
이렇게 쌍둥이라는 특수한 양육 환경은 인간의 결을 이해하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평균값 산출 불가의 상황에서야 나는 마침내 인간의 고유한 특질을 이해하게 된 셈이다. 그토록 어려웠던 숙제도 드디어 이렇게 한 페이지 넘겨졌다.
한 아이를 키웠다면 아이의 기질 문제로 치부해 버렸을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둘을 키우며, 도무지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 나는 마침내 알게 되었다.
기질의 이해는, 사랑의 문턱을 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이 사실은, 지난 시간들에 대한 보상처럼 주어졌다. 두 아이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지쳤던 시간들이 스쳐갔다.
놀랍게도, 두 아이가 비슷할 거라 추측했던 예상이 깨짐으로써 나는 사랑의 문 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다름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이다.
나는 문턱에서, 사랑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린다.
아이들이 내게
왜 엄마는 엄마냐고 묻지 않듯,
너도, 너여도 괜찮다.
내면과 외면,
느림과 빠름,
침잠과 분출,
불안과 기쁨.
그 모두가 너의 일부이기에,
너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나는 이제
나를 나로,
너를 너로 받아들이며,
그렇게 우리가 되는 길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겠다.
너는 너라서 특별하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여기서 마음 깊이 새겨두겠다.
《Vol.1-나에게로의 귀로》는 감정을 구조화하는 언어로 삶을 다시 세우려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Vol.1에서는 자아 상실과 회복, 감정의 언어화를 다뤘으며,
Vol.2에서는 기억과 윤리, 관계의 감정적 구조를 확장해 탐구합니다.
Vol.1은 완결된 형태로 전면 공개되었습니다.
Vol.2부터는 출간을 위한 정제 작업에 돌입하여,
당분간 연재를 중단하고 투고 일정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더 깊고 응집된 문장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