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강 너머 외로움 저편에서.
침묵으로 대답해 주세요.
‘세상이 원하는 모습이지 않아도 괜찮다.’
내게 이 말은, 바닥을 딛고서야 허락할 수 있었다.
시계조차 읽지 못하던 나이, 나에겐 큰 상실이 찾아왔다. 그토록 사랑하던 엄마와 생각지 못한 방식의 이별이 그것이었다.
기껏해야 나와 15개월 차이 나는 언니는 동생을 살뜰히 챙겼지만, 아마 언니도 이 방식을 예측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이 사건이 다 자란 내게 어떻게 말을 걸어오는지 미처 알지 못했었다.
언젠가, 어린 시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을 얘기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었다.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한 사건이 불현듯 나를 스쳤다. 그것은 마치 며칠 전의 일처럼 내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내복차림의 언니와 나. 양쪽 신발이 바꿔 신겨진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두 아이. 집에서 한참을 내려오면 있는 큰 사거리에, 두 아이는 쪼그려 앉아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문 닫은 약국의 시계는 어느새 새벽 두 시를 가리켰다. 이제 막 숫자와 시계를 알아가는 언니가 두시가 넘어간다고 이야기하며 늦었으니 집에 가자고 나를 회유했다. 멀리서 비틀대며 걸어오는 아빠의 모습. 그리고 며칠 뒤로 연결되는 기억은, 엄마가 맡겨두고 간 약간의 돈으로 컵라면을 먹으며 언니와 마주 보며 웃었던 기억이다.
아마도 엄마의 상황설명은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아이의 방식대로 해석되었을 테니, 어차피 엄마의 부재는 설명과는 무관히 나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약속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현실은 목을 겨우 축일 정도의 안도만을 내게 주었을 뿐, 발등에 떨어져 버린 불씨의 흔적을 지워낼 수는 없었다.
커가는 과정에서 그 입장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던 내가, 엄마의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알고는 그 기억을 다른 기억들 아래에 깊이 숨겨주었다.
다만, 무의식에 깊게 새겨진 그 마음의 잔상이 언어화되기까지는, 아주 긴 세월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공간을 초월한 그날의 파장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외로움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내가 청춘의 파릇한 모습으로 살아갈 무렵에는 기다림을 시작하게 했다. 아무도 오기로 약속하지 않았는데, 나는 늘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의 끝에는 항상 구체적인 대상이 서있었다.
나는 지목된 대상을 치열하게 사랑했다. 그에게 나를 쥐어주었고, 필요하면 꺼내 쓰도록 허락했다. 사랑은 분명 둘이 하는 것인데, 그 자리의 나는 점차 닳아 곧 없어져버렸다.
상실이 두려워 기껏 사랑을 했건만 우습게도 나를 상실해 버렸다.
그럼에도 상대를 소유했다면 이야기는 달랐을지 모르겠다. 나는 나를 내어준 값으로 붙들어놓은 상대조차도 결국은 상실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개인의 외로움은 그리 대단치 않은 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조용히 뿌리내린 외로움은, 타인의 삶에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사랑은 둘을 하나로 빚어내는 일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상대의 자유를 내 것으로 만들려 했다. 그러는 사이 그 강박적인 생각이 내 자유도 들고 달아나버렸다.
사랑을 이유로 억압하는 것. 비단 연인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일 테다. 이것은 단적인 예시일 뿐, 상실의 두려움을 품은 외로움이라는 이름은 곳곳에 숨어서 여러 얼굴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공동체를 하나로 보는 사회에 치를 떨며 개인 존중을 외치던 나를 떠올린다. 정작 나는 사랑을 빌미로 하나 되려 했다는 사실. 그 모순을 이제는 인정한다.
그러기에 누군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가하는 압박은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고, 어떤 목적으로, 얼마나 잘 포장되었는가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사랑일 뿐임을, 나는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외로움은 이렇게 우리에게서 존엄을 들고 달아난다. 어쩌다 운 좋게 외로운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희생해서 결국 하나를 이루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운은 모두에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외로움을 경계해야 한다.
가장 사랑답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나로 허락하는 일이 먼저라는 것, 그것이 결국 상실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지난 삶의 모순과 함께 이 자리에 조용히 펼쳐둔다.
우리가 우리를 외롭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
허무하게도, 나로서는 이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