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게 남긴 붉은 봉투 속 가르침.
가장 사소한 윤리, 그 시작.
위태로운 것은 삶의 조건만이 아니었다.
주기적으로 나를 삼키는 황체호르몬 앞에서,
나는 내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위태로웠다.
‘그날’이 찾아오면 나는 유리 같았다.
쉽게 부서졌고, 날카로워졌다.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려 애써 훈련해 온 시선도, 세상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조심히 조립해 둔 나조차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나를 이해해 줄 사람도, 내가 이해할 사람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 주간이면 나는 이유 없이 세상을 미워했다. 감각이 예민한 내게, 이 시기는 그것을 더욱 예리하게 갈아내는 숫돌이었다.
언제 찾아올지 알면서도 피할 수가 없다는 현실, 그 예고된 조우는 나를 점점 무력하게 했다. 마치 범위가 정해진 시험 같았다. 수많은 감정은 굴곡을 온전히 겪어내야지만 끝이 났다. 바닥을 친 마음들도 시기의 종료를 딛고서야 도움닫기를 할 수 있었다.
호르몬으로 인한 감정기복을 세상이 이해해 줄 리 없었다. 그러니만큼, 그 시기가 찾아올 때면 나는 노련하고도 철저하게 그 사실을 세상밖에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기한은 나를 버티게 했지만, 해방은 없었다. 반복되는 시기마다 나는 찌그러진 내 모습을 주시하며, 누군가 그곳에 일부러 조명을 비추는 것만 같은 불편함을 견뎌내야만 했다.
한 달의 1/3을 불안정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일관성을 중시하던 내게 모순 그 자체를 견디게 하는 고문 같았다.
그러나 세상의 불허보다도 나는 나의 시선에 더욱더 숨이 막혔다. 세상도 받아주지 않는데, 나도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들쑥날쑥한, 평소 같지 않은 감정들을 세상에 알리기 부끄러웠다. 그렇게 불청객 앞에 선 나는, 자신의 불편 앞에 스스로를 가장 먼저 벌주는 사람이었다.
감정이 정점을 향해 치달을 때면, 나 자신을 꾸짖은 미안함과 이해받지 못한 서러움이 뒤섞였다. 이 감정들은 자기 연민을 낳았다. 수년을 겪어온 타격에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나는 애써 버텼다. 겨우 호르몬 따위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쓸데없는 오기가, 오히려 나를 부서트렸다.
나는 결국 무너졌다. 그대로 엎어져 울며 나를 끌어안았다. 누구도 용인해주지 않을 거라는 그 두려움이 나를 안게 했다. 스스로에 대한 박대로부터 눈물이 흘러나왔다. 통회로 끓인 눈물은 울수록 온도가 높아졌다.
이번에도 똑같을 거야. 모든 게 날카로울 거야.
예상치도 못한 시점에서 체력도 방전될 거야.
너는 울고 싶겠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또 웃게 될 거야.
이 말은 나를 비웃는 말이 아니었다. 내가 내게 읽어주는 친절한 설명서였다.
그러니 오늘 조금 더 몸을 돌보기를,
타인의 감정보다 내 마음을 더 살피기를,
내 모자람도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 보일 거라는 것을, 내게 따뜻이 타일러주는 말이었다.
우습게 여겼던 호르몬이 하는 일은 대단했다. 나를 멋대로 쥐고 흔들었다. 하지만 흔드는 동시에 나를 돌보게도 했다. 2차 성징 이후 수십 년 동안 함께 했던 이 신체 일정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자신을 돌봐달라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점점 큰 소리로 내게 말을 건네고 있었던 것이다.
완벽이란 더 이상 완전한 동그라미가 아니었다. 찌그러진 한 귀퉁이까지도 내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이것이 내게 완벽이 아닐까.
이 생각도 여지없이 대자연이 찾아온 뒤에야 가능했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내게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일상의 고요가 다시 찾아왔다. 은폐하기 바빴던 감정들을 매대에 늘어놓았다. 다시 들여다보니 하나도 잘못된 것 없는, 판단받아서는 안될 소중한 감정들이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던 내게, 스스로 묻고 싶어졌다. 무엇 때문에 무너지면 안 되는지, 무엇이 그리도 힘겹게 붙잡고 있도록 했는지 궁금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내 발목을 매어두었던 금기가 눈에 띄었다.
‘마음대로 굴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것을 풀어버렸다. 더 이상 남은 것은 없었다. 겨우 이 이유 하나 때문에, 그 숱한 감정들을 그토록 숨기려 들었을까. 나는 이제 나를 감추지 않아도 괜찮다고 받아주어야 했다.
이 시기는 다음 달에도 찾아올 테니, 주변과 나 스스로에게 양해를 구하며 이 상황으로부터 나를 구조하기로 했다. 절대 드러나면 안 된다고 나를 몰아세우며, 안 그래도 찌그러진 내 아픈 구석을 더는 망치질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주기적 손님이 내게 바랬던 것은 어쩌면 돌봄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의 굴곡진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음 달을 준비한다.
어느 날엔가, 무너짐을 허용하는 말조차 필요 없어질 만큼 많은 시간이 나를 덮고 지나가면, 이 불청객도 떠나갈 것이다. 호르몬과 이별하게 될 그날이 오면, 또 다른 고단이 나를 찾아오겠지만, 그때도 나는 여전히 나를 돌보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달력의 손님은 끝내 내게 가장 오래 곁에 두어야 할 존재가 누구인지, 그 존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었다. 그것은 가장 잊기 쉬운 나를 돌보는 윤리이자, 스스로를 포용하는 사랑이었다.
나를 돌보는 것, 그 사소한 윤리로부터 타인에게로 흘러들 사랑의 물줄기가 시작된다. 이 원초적인 사랑이 막힘없이 흐를 때, 비로소 필요한 곳으로 사랑이 연결된다. 나는 이 원천을 잘 가꾸기 위해, 오늘도 나를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