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궤적을 따라서.
흩어져 있던 고통의 구슬들을 하나로 꿰어냈을 때,
비로소 빛이 되었다.
탄력은 부러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닌,
부러져도 괜찮다는 허락으로부터 주어지는 힘이었다. 찌그러진 채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삶의 묵직한 균형.
모두가 잠든 밤이었다. 내 시련의 역사는 석순처럼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조용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통을 왜 감내해야만 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도를 닦는 것도 아닌 내가, 아주 사소한 수준의 고통들을 참아내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 아무리 질문해 보아도 동굴 속 메아리처럼 질문만 도로 들고 올뿐이다.
아직 완전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아이와 산다는 것은 내게 너무 많은 인내를 요구했다. 뜻대로 되지 않아 화를 낼 때면 엄마라는 역할은 모든 것을 응당 받아내게 했다.
사랑스러운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부모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는 명분은, 내 안의 생기를 뿌리째 뽑아갔다. 나는 억압과 어깨를 나란히 자라왔음에도, 이렇게 압력이 가해질 때면 뜨거운 음식을 넣고 곧장 닫아버린 밀폐용기처럼 스스로를 꽉 잠가버렸다.
그렇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받아냈던 감정들이 다시 차올랐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나쁜 것들이 내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나더러 감당하라는 듯, 세상의 구원자라도 되라는 것 같았다.
방치된 의식의 흐름은 마치 내가 모든 것을 감내할 존재인 양, 묘한 자기 확신으로 나를 이끌고 갔다. 나는 이 흐름을 멈춰야 했다. 그러기 위해 나에게 질문해야 했다. 나는 정말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집안 형편으로 원 없이 전학한 횟수,
늘 이방인으로 겉돌며 적응해야만 했던 유년,
불화를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던 무력함,
부모님의 헤어짐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사춘기,
나를 스스로 파괴해 내던 청춘.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야 했던 장면들,
이해가 아닌 체득해야만 했던 시간들은 내게 무엇을 남겼을까.
고통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면, 오히려 고마워야 마땅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이 고통이 미래의 나를 이끌기 위해 눈앞에 나타난 것이라면, 그 순간조차 감사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겹게 건너온 시간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전기라도 통한 듯 부르르 몸서리가 쳐졌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벅찼던 일들이었음은 분명했다. 이제는 감히 감당해내지도 못할 일이니만큼 그 시간들이 내게 남겨놓은 것들을, 나는 기필코 찾아내고 싶었다.
비좁은 문을 구겨 지나가듯 매일을 겨우 통과해야 했던 어린 날. 세상의 메시지는 감각으로 파고들었고, 끝없이 질문하게 했다.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를 본질로 데려다 놓았다.
펄펄 끓는 용광로에 녹여내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나라는 결정체와 녹아내리던 과정만이 고이 남겨졌다. 그렇게 한 차례씩 괴로움을 통한 제련과정이 거듭될수록, 선물은 내게 더 깊이 자리 잡아 어느새 나를 이루고 있었다.
세상은 나를 파괴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 험한 시간을 겪어내고도 남은 것이 나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내게 왔던 것이다.
세상이 시련이라는 구슬을 줄 때에는 반드시 그것을 꿸 실도 준다. 현실에 넉다운되어 누워만 있다 하더라도 그 순간조차 구슬을 꿰어가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아차렸다. 한바탕 울고나야 비로소 시작이다.
문득 누군가의 무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나를 떠올린다. 되받아치고 싶었던 그날, 어리던 나는 그 쓰레기를 그대로 들고 와 집에서 몇 날 며칠을 함께 뒹굴었다.
처음에는 화도 났다. 억울하고 미웠다. 그러나 그 끝까지 온전히 괴롭고 나면, 나에겐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시선이 훈장처럼 주어졌다.
그것은 연민이 아니었다. 오롯이 그가 되어보는 시선이었다. 동시에 내가 뭐라고, 하는 낮은 시선도 함께 부록처럼 딸려왔다. 시선의 전환은 내게 미움이라는 감정을 조금씩 지워주는 지우개가 되어주었다. 결국 고통이 지우개를 선물한 셈이다.
고통은 내게 낮은 자세를 알려주었다. 낮은 곳에서 타인을 깊이 바라보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나를 낮게 머무르도록 하는 이 시선에서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단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라고. 이 완벽한 수동의 삶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오로지 낮은 자세일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별 볼일 없는 사람인지를 알게 하고, 그로써 모두를 대등하게 보게 하려는 것이라 감히 생각해 본다.
나는 보물 찾기를 하듯, 지나온 자리마다 하나씩 숨겨진 보물들을 찾아냈다. 보물들은 보이지 않았을 뿐,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지나온 경험들은 모두 그물 위로 떨어졌다. 어느 것도 빠짐없이 그 위로 차곡차곡 쌓였다. 그물이 가득 차는 때가 비로소, 삶의 수확이 이루어질 때라는 걸 믿기로 했다. 그 믿음이 삶의 아름다운 비밀을 알려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나와 나 사이의 간극을 좁혀갔다. 간극은 좁을수록 더욱 단단해졌다. 그리고 단단한 삶은 누구도 파괴해내지 못했다.
내가 무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괴로움을 겪으면 이내 휘청였지만, 그럼에도 기어이 복원해 내고야 마는 탄력성이 내게 생겼다는 것이다. 껍데기에 생채기는 날 지언정, 그 알맹이는 누구도 감히 훼손할 수 없었다.
단단해진 알맹이도 비와 바람이 한 두 차례 지나고 나면 더욱 유연해져 있었다. 잘 익어가는 감처럼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고통이 지난 자리엔 순도 높은 유연함이 자취를 남겼다. 마치 세상을 움직이는 정수는 부드러움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과정은 내게 깨달음을 주었다.
세상을 우리에게로 당기는 자력은 결국, 단단한 탄력성이다. 이것이 풍파가 우리를 여과해 내는 이유이고, 우리가 단단해져야 하는 이유다.
밀도 높게 자신을 돌보고, 매일 다가오는 일을 정직하게 소화해 내며, 하루에 주어진 에너지를 고루 안배하여 잉여와 부족이 없도록 운용하는 것. 이 사소하고도 위대한 태도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힘은 일상의 무게를 초월한다.
나는 예상대로 세상을 위한 구세주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와 가까이 지내며 자신에게 정직하게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자존을 지켜내는 가장 단순하고도 본질적인 방식임을 또렷하게 알게 되었다.
그러니 문득 텅 비어진 순간이 오면, 고통이 남긴 것들을 기억하면 좋겠다.
나의 사사로운 고통이 가장 작은 단위로 우주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것을.
나의 미약한 자성도 누군가를 세상에 발 붙이고 살 수 있도록 일조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으로 자신의 고통도 의미 있다는 것을.
부서지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부서진 나를 다시 주워 담을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스스로와 가까워진 존재의 단단함으로
탄력을 지닌 우리가 되기를,
우리가 그렇게 살아내주기를,
이 자리에서 조용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