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투항하지 않고 공존하기.
나 끌어안기가 필요한 당신에게.
월요일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주말 내 각자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돌보느라 미뤄두었던 일상으로 서둘러 돌아오는 시간이다. 저마다의 시작에 가쁜 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아이가 남겨둔 공간에 귀를 기울인다.
주말 동안 아이가 남겨놓은 흔적들로 공간은 온통 빽빽하다. 이 빼곡한 공간을 여백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마음마저 몸을 따라 자꾸만 머문다. 환절기 역병을 막 지나온 몸이 만들어 낸 정당함이다. 체력이 약해지면, 마음도 쉽게 슬퍼진다.
누구의 도움 없이 단손으로 아이들을 돌본다는 게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박수받을 일도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내게 이 평범한 숭고함은 어느새 ‘숙제를 다 마친 이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진다. 도움받을 곳 없는 이 낯선 곳에서, 내가 잘 버텨는 게 무슨 의미라도 있을까. 무심한 질문이 나를 툭 친다. 나는 나를 이끄는 생각에 저항할 틈도 없이 잠식됐다.
내 정서 저 편엔 어둠이 그윽하게 깔려있다. 나는 그곳에 발 붙인 채로 자라왔다. 누가 구태여 심어둔 것도 아닌데, 내가 그렇다. 그 소속의 존재감이 불쑥 수면 위로 드러날 때면, 나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쳐보지만, 발에 닻이라도 걸린 듯 속수무책으로 가라앉고 만다.
그곳에는 갯벌이 드리워져있다.
질퍽이고, 무겁고, 비린내가 나는 그곳.
나는 그곳에서 한 발 한 발을 힘겹게 내딛으며 본능적인 삶을 살았다. 생각은 불필요했다. 오직 감각에 의지해 생을 풀어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때와 같지 않음을 의식하고 있음에도 심신이 지치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그곳으로 회귀되었다. 두려웠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살기 위해, 이 두려움에서 달아나기 위해 생각의 끝을 좇았다. 끊어내지 못하더라도, 그 구조는 알아내고 싶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의 어린 내가 울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나를 건져낼 적당한 도구를 떠올려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것도 없다. 내가 가진 거라곤 오직 내 두 팔과 다리, 그리고 헝클어진 영혼뿐이다.
도구가 없다면 끌어안을 수밖에.
작전명: 투항하지 않고 공존하기.
갯벌은 상처의 장소다. 그럼에도 이게 내가 가진 정서이니, 이 특유의 분위기를 나는 좋아해야만 했다. 이 갯벌에서 나는 두 팔로 나를 떠안기로 비장하게 다짐했다.
겉면에 크게 적혀있는 친절한 설명을 무시한 채 무심코 뜯어버려, 여러 갈래로 찢긴 봉투처럼 나도 나를 그렇게 대해 왔던 날들을 떠올린다. 대충 찢고, 대충 봉해서 어딘가에 던져놨던 그 무심함 속에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날들을 돌아본다.
나는 이제 그 친절한 설명서를 찬찬히 읽고 있다. 나를 무겁게 앉아있도록 만든 이 신체의 피로도, 정서의 과거도 내게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나의 짓무른 뿌리를 더는 덮어두지 않기로 했다. 갯내음을 풍기더라도 열어둔 창으로 바람이 통하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이것 역시 내 것임을 안다. 나는 내게서 풍기는 이 냄새를, 밀폐시키는 대신 순환시키며 뿌리가 썩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진주도 처음엔 상처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품지 않으면 어떤 빛도 가질 수 없다. 나는 기어이 지난 상처를 품어, 내 안의 진주를 지켜내고 싶다.
짠내를 닦으며, 다시 헝클어진 나를 붙들고 여기저기 살핀다. 내게 주어진 재료로 빚은 진주는 어떤 빛을 띨까.
이제 갯내음을 맡는다면,
나는 두려움보다 고귀한 빛의 진주를 먼저 떠올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