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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임 Sep 24. 2023

고민상담용 친구

해결책을 원하는게 아니라면, 너 F야?

9월 23일


역시나 오늘도 부재중 전화가 왕창 찍혀있다.


자취방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는, 너무 진이 빠져 소파에 눕는다기 보다는 털썩 널부러졌다가 맞는 표현.

저녁 8시였다. 거기까진 기억이 난다.


인상을 찌푸리며 잠에서 깬 지금은 밤 10시. 부재중 통화를 보고도 무시했지만 ‘미안. 내가 정신이 없었네'하는 인트로를 시작으로 왜 전화를 못했는지에 대한 해명 카톡을 보냈다. 이유도 물었다. 


물론 다 예의상 보낸 말들. 미안하지만 지금은 궁금하지 않아.

 




짜증이 솟구친다. 


일분전에 카톡을 보낸 난, 지금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 혼자 있고 싶은데. 내 고요함을 향유할 수 있도록 냅뒀으면 좋겠는데. 


범인은 중학교부터 친구인 k양. 

나 못지않게 다이나믹한 삶을 살고 있는 k양은 최근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다. 영어 학원에서 본인이 느끼는 ‘애매한 느낌'을 나에게 들이민다. 그리고 ‘해석' 버튼을 누른다. 자판기처럼. 10분 가량의 배설하는 k양의 말을 다 듣고는 입술을 떼어본다. 너 사실 이런게 무서웠던 것 아니냐고. 너가 이런 성격인건데 그 사람이 그걸 자꾸 건드니까. 니 영역을 침범당할 것 같아서 두려움에, 그렇게 회피한 건 아니냐고. 


이게 나의 출력값. 한참이 말이 없다 넌.


‘설임아. 어쩜 넌 나보다 나를 잘 아는 것 같아. 내 뇌 분석하는 로보트냐?’ 


자판기 버튼을 누른 건 너면서, 내탓을 한다. 그렇지만 너의 목소리가 훨 밝은걸. 


짜증이 솟구치지만 부재중 통화를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랄까. 내 조언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공감이거나 어줍짢은 위로가 되지 않길 바라서. 자취방 밖에서도 하던 걸 너에게도 하고 있다. 너가 좋다면 그걸로 됐다. 계좌번호는 저번에 보냈으니까 그리로 보내줘. 아 두개중에 카카오뱅크로.


어쩌면 나에게 원하는 것이. 해결이나 공감. 그 무엇도 아니라.

'나를 좀 알아 줘'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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