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육교?
우리 그냥 한 달에 한번씩만 모이면 어때요?
프로젝트나 수행할 과제 없이 그냥 딱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 나누어요.
뭘 꼭 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말이에요.
이렇게 모임을 만들었다.
14년째 교직에 있으면서도 아직 나는 방법을 찾지 못한 찐배움이 일어나는 생동감 넘치는 수업이 궁금했다.
궁금을 넘어서 간절했다.
공립 학교에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진심이고 수업에 열정적인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참 귀했다.
그래서 그 귀한 선생님들을 잡고 늘어져보고 싶었다.
방법이 뭐에요? 비결좀 알려주세요.
분명 이 선생님들과의 대화 속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교육은 가르칠 교, 기를 육을 써요."
학급당 26명인 큰 학교에서 8명인 작은 학교로 옮기신 지 2년 째 선생님은 지역내 알아주는 수업 베테랑이다.
특수학급 1학년 아이의 통합지원을 갔다가 그 선생님의 일상적인 수업을 우연히 보게 된 나는
언젠가 EBS의 특집 다큐를 보고 동경해온 핀란드의 수업을 보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요즘 수업때문에 고민이시란다.
선생님 계신 학교는 나도 5년간 근무했었던 작은 학교인데 지역적인 특성상 가정 환경에 어려움이 많은 아이들이 대다수이고 신기할 정도로 아이들 각자의 개성이 강한 곳이다.
선생님이 주제를 담은 질문을 하면 탁구공을 치듯이 핑퐁 거리며 아이들 생각이 이어지고 이어져 목표했던 곳에 닿아야 하는데 자기주장과 개성이 강한 소인수 학급에서는 그게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삐그덕 거리는 느낌.
오히려 생활지도 면에서는 아이들의 변화에 감동스러운 것이 많아졌는데
수업에서는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그 학교 상황을 잘 아는 나는 그게 어떤 모습일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 했다.
이야기를 경청하시던 또 다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교육은 가르칠 교, 기를 육을 써요."
가르치는 것과 기르는 것 둘 다 교육이다. 아이들에 따라 가르치는 것보다 기르는 것이 더 먼저일 수 있다.
즉 기른 다음 가르쳐야 하는 아이가 있는 것 같다.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지금 선생님이 마음을 읽어주고 보듬어주는
그것이 결국 아이들이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과정이 될것이고
분명 시간이 지나면 수업 상황에서도 드러나게 될거다.
아..
특수교육을 하면서 한정된 시간 안에 '교'에 집중해야 하는지 '육'에 집중해야 하는지 고민이 될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더하기도 어려우했던 우리 반 OO가 오늘 받아내림 뺄셈을 이해했다는 것에 감격스럽고 행복했는데 막상 화장실에서 뒷처리를 아직도 제대로 못할때?
시간은 한정적인데 ...그 시간을 할애해서 뒷처리하는 방법을 가르쳤어야 했나?
나 역시 "교사는 수업으로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게 무의식 중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꾸 '나도 수업 잘 하고 싶다.'라고 부러운 생각이 들었을거다.
'교'보다 '육'이 더 먼저 필요한 아이들이 있다.
궁극적으로 내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가? 그 질문에 연결되는 것 같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초등학생부터 대입을 위한 준비를 하는 걸 목표로 한대요.
선생님은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했으면 하는 목표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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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들의 대화(2)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