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시시비비-12>
1화. 거꾸로 걷는 존재, 방향 없는 연민
벤자민 버튼은
세상과 반대로 나이 들어간다.
삶의 끝에서 태어나
젊음으로 퇴행하는 그의 시간은
선이 아닌 원에 가까웠다.
그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가?
•
시간이 선형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디에 닿게 될까?
시간의 끝이 아닌,
순환의 한 지점에서
삶을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과 어긋나는 존재는
그 자체로 고독하다.
하지만 바로 그 어긋남이
존재의 본질을 비추기도 한다.
•
그의 삶은 물음표로 시작해
느낌표도, 마침표도 없이
조용히 끝났다.
질문만 남긴 삶,
그 자체로 철학이었다.
•
나는 문득
철봉에 매달린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거꾸로 매달린 채 하늘을 보면
나는 발로 하늘을 딛고 있었다.
하늘과 땅이 뒤바뀐 순간,
세상은 잠시 낯설어졌고
그 낯섦 속에서 나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를 느꼈다.
매 순간,
우리는 그렇게 벤자민이 된다.
•
누구나 기억을 회상할 때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죽은 이를 떠올릴 때,
지난 사랑을 추억할 때,
삶의 가장 깊은 자리에 닿을 때
우리는 시간의 선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흐름은
이해가 아닌 체험이며,
논리가 아닌 실존이다.
•
매년 12월과 1월 사이,
나는 이 애매한 시간의 틈을
가장 혼란스럽고,
동시에 가장 질서 있는 시기로 느낀다.
모든 것이 끝나기 직전,
모든 것이 시작되기 직후.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다시 묻는다.
“우리는 누구인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가?”
•
우리는 모두
벤자민의 시간 속을 살아간다.
그리고 또 다른 순간,
우리는 《흐르는 강물처럼》의
노먼이 되기도, 폴이 되기도 한다.
질서 속의 혼란,
혼란 속의 질서.
우리 안엔
이 모든 인물들이 살아 숨 쉰다.
그들은 찰나처럼 튀어나오고,
다시 사라진다.
•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나도 벤자민이다.
문장을 거꾸로 써 내려가 보기도 한다.
12에서 1까지,
다시 1에서 12까지.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어디쯤에서 교차된다.
그 지점에서는
옳다, 그르다의 경계가 무너진다.
•
돌고 도는 시곗바늘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벤자민이며,
노먼이며, 폴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아이들이고,
연민과 질문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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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CBB-12〉 1화.
존재는 방향을 잃을 때, 가장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