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시시비비-12>
’더시시비비(是是非非)’는 ‘옳고 그름을 분별함’을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이 시리즈는 그 옳고 그름 사이의 흐림, 그 중간 지대에서 인간의 감정과 존재를 사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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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강은 흐르되, 마음은 멈춘다
“강물은 늘 흘러간다.
하지만 마음은 어떤 순간, 흐르기를 멈춘다.”
삶은 흐름이다.
사건은 지나가고, 사람은 떠나고,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은,
그 모든 흐름에서 종종 멈추어 선다.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사랑을 온몸으로 기억하던 순간.
시간은 흘렀지만
그 감정은 강물 한가운데 고여 남았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형제는
같은 강에서 자랐지만
다른 삶을 살았다.
같은 자연 속에서 자란 두 사람은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한 사람은 강을 건너고,
한 사람은 강가에 남았다.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한겨울 오후,
눈 내리는 날이었다.
작은 세탁소 유리문 너머,
엄마는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귤빛 털실이 방바닥을 튀듯 구르고,
보리차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아이였던 나는
난로 앞에 앉아,
엄마에게서만 나는 따뜻한 냄새를 맡으며
세상이 꽉 찬 것처럼 느꼈다.
그건 ‘사랑’이라는 이름도 모를
온기의 형태였다.
하지만 곧 언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눈을 가득 머금은 모자와 장갑을 벗으며
“썰매 만들어줘!”라며 떼를 썼다.
엄마는 바늘을 내려놓고
언니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얼굴이 얼었네, 아이고 우리 딸—”
나는 아무 말 없이
색연필을 다시 들었다.
공주의 드레스에 색을 입히며
내 감정을 공주의 이름으로 대신 표현했다.
사랑은 비교의 감정일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어쩌면 나는 소외를 느끼고 있었다.
엄마의 ‘참 예쁘구나’라는 말은
더 이상 내 차례가 아니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자각했다.
공주에게 이름을 붙이는 순간,
나는 나를 처음으로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은 흐른다.
그러나 흐르지 못한 감정은
그 자리에 머문다.
시간은 지나가지만,
그 감정은 그대로 존재한다.
그게 바로 ‘기억’이다.
흘러가기를 거부한 마음의 지점.
그 기억 위에
나는 질문을 올려놓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확신이었는가, 착각이었는가.
왜 어떤 기억은 떠오르지 않고,
어떤 기억은 매년 같은 계절에 되살아나는가.
강은 늘 흘러가는데
왜 마음은 그 자리에 멈춰 있는가.
어쩌면 강물은
우리보다 훨씬 성숙한 존재다.
말없이 흘러가고,
말없이 기억하며,
말없이 받아들인다.
형제는 서로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이해에 이르지 못했다.
그 슬픔은
그대로 한 사람의 마음 속에 남았다.
지금의 나도
그때의 아이처럼
사랑을 떠올릴 때마다
한 지점에서 멈춘다.
다시 흐르기 위해
잠시 멈추는 감정,
그것이 지금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삶은 계속 흐르고,
강도 흐르지만,
우리의 마음은
어떤 순간,
그 모든 흐름에서
조용히 멈춘다.
그리고 그 멈춤은
우리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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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CBB-12〉 2화.
흐름 속에서 멈춘 감정이
삶의 깊이를 만든다.
<위대한 유산> <AR2TI-12>
—ing 리디아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