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존재의 두강

〈더시시비비-12>

by 리디아 MJ

4화. 그는 강을 건넜고,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이별은 떠난 자의 것이 아니다.

남은 자의 시간이다.”


죽음은 언제나 강을 건너는 일과 닮았다.

누군가는 먼저 건너고,

누군가는 강가에 남는다.


그리고 남은 자는,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슬픔이란, 그렇게 강물처럼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형은 떠났다.

한 줄기 물결처럼 조용히,

그러나 너무도 빠르게.


그의 부재는 소리 없이

우리 가족의 시간을 침식시켰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아버지의 어깨를 보았다.

무너진 듯 꺾인 그 어깨.

말이 없었다.

단지, 그 침묵이

가장 큰 울음처럼 들렸다.



나는 생각한다.

이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죽음이라는 문턱에서가 아니라,

아마도 그보다 훨씬 전—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첫 번째 순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죽음은

끝이 아니라 확인이다.

이제 정말

그를 다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조용한 선언.



철학자들은 죽음을

‘타자의 절대적인 타자됨’이라 부른다.

남겨진 우리는,

타자가 되어버린 존재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슬픔은

설명이 아니라, 체험이다.


누군가는 눈물이 되고,

누군가는 말이 된다.

누군가는 침묵 속에

한 송이 꽃처럼 남는다.



그날, 장례식장 뒷마당 벤치에 앉아

나는 마지막 인사를 떠올렸다.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잘 가.”

“다음 생에 만나.”

그 어떤 말도

그를 떠나보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말 대신

강을 바라보았다.


강물은 무심하게 흘렀다.

우리의 기억과는 무관하게,

그는 이미 저편으로 떠났다.


그리고 나는

남겨진 삶을 꿋꿋이

버텨내야 하는 자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어깨에 기대 울 수 없다는 것.

그 사실이야말로

진짜 이별이었다.


어쩌면 사랑은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감정이다.


남겨진 자는,

강물처럼 흐르면서

죽은 자를 기억하고,

그의 이름을 마음속에서

끝없이 부른다.


“형.”

“거기서도, 잘 지내지?”

그 말들은

기도 같고,

속삭임 같았다.


나는 다짐했다.

그의 몫까지 살아내겠다고.

무너진 마음을 세우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으며

슬픔 속에서도

다시 ‘오늘’을 만들겠다고.


그 결심은

고통이 아니라

연대였다.


이별은 떠난 자의 것이 아니라

남은 자의 몫이다.

그 몫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일이

삶의 두 번째 절반을 만든다.


그리고 그 절반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준비가 되는

조용한 과정이다.




강은 흐른다.

그를 데려간 그 강물은

이제 나를 앞으로 이끌고 있다.


나는 더 이상

그가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그의 부재로부터

나의 존재를 다시 세운다.



나는 남겨졌고,

그래서 살아있다.


남은 자는 흐르고,

흐르기에

끝내 도달하게 된다.


형이 먼저 간 그 강 너머,

우리 모두 언젠가 닿게 될 그 자리.


그러니 나는 오늘도

흘러간다.



〈The CCBB-12〉 4화.

이별은 부재가 아니라

다른 흐름으로의 진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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