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시시비비-12>
5화. 거꾸로 흐른다는 건, 끝을 먼저 안다는 것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우리는 사랑을 더 조심히 다뤄야 하지 않을까.”
만약 누군가의 인생이
끝에서부터 시작된다면,
그는 사랑을 어떻게 할까.
이별을 먼저 겪은 사람은
사랑을 더 신중히 여길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일까.
벤자민 버튼의 삶처럼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세계가 있다면,
그곳의 감정은
우리보다 더 맑을까,
혹은 더 빨리 지칠까.
사랑이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일이기에,
거꾸로 흐르는 사랑은
시작부터 엇갈릴 수밖에 없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 끝나고 있다는 예감을
사랑이 시작될 때부터 느꼈다.
처음부터 마지막을 아는 감정—
그건 축복이면서
또한 비극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우리의 대화는 희망으로 가득했었다.
“함께 늙어가자.”
“백발이 되어서도 손잡고 걷자.”
그 말들은
진심이었고,
같은 방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잃어갔다.
아이를 키우고,
직장을 다니며
서로의 역할에 충실할수록
우리는 감정을 소홀히 다루었다.
사랑은 여전히 있었지만,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점점 침묵의 형태로 굳어졌다.
우리는 함께 있는 방 안에서
서로 다른 풍경을 보고 있었다.
그 침묵의 벽을
누가 먼저 깨야 하는가.
나는 오랜 망설임 끝에
손을 내밀었다.
말로 하지 못한 모든 것을
짧은 쪽지에 담았다.
“우린 아직도 같은 시간 안에 있지?”
그 말 하나로
다시 대화가 시작되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란 ‘죽음을 향한 존재’라 했다.
그 말처럼
삶의 모든 순간은
끝을 향해 가는 여정이고,
그 사실을 안다는 건
삶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지금 서로를 바라보는 이 순간이
언젠가 사라질 것임을 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따뜻해질 수 있을까.
시간은
모래시계처럼 흘러간다.
그러나 그것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뒤집으면
다시 시작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끝난 줄 알았던 감정이
어느 날 문득
다시 나를 향해 흐르기도 한다.
그날, 우리는 약속했다.
“이별의 순간이 오면,
이틀만 슬퍼하자.
그 이후엔,
함께 웃었던 기억만 꺼내자.”
그 다짐은
서글프지만 아름다웠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사랑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끝을 먼저 알게 되면
사랑은 더 조심스럽고,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사랑은 여전히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삶은 결국,
흐름이 아니라
깊이였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흘러간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감정이었다.
이제 나는
과거보다 미래보다
오늘의 사랑을 붙잡는다.
끝이 먼저 오는 세계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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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CBB-12〉 5화.
끝을 알고 시작하는 사랑은,
오히려 더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