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존재의 두강

<더시시비비-12>

by 리디아 MJ


7화. 나는 나를 늦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언제쯤

나를 완전히 이해하게 될까.

어쩌면, 그때는

이미 많은 것이 지나간 후일지도.”


벤자민 버튼은

삶을 거꾸로 살아간다.

어릴 땐 노인이었고,

나이를 먹을수록 젊어졌다.


그의 삶은

점점 더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일까.

그는 누구보다 천천히

자기 자신을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내가 누구인지 완전히 알게 된 순간은

늘 한참 늦게 찾아왔다.


고통이 지나간 뒤에,

상처가 아물고 나서야

그 감정의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났었지?”

“왜 그토록 외로웠을까?”

“그때 그 말, 왜 하지 못했을까?”


자주 묻는다.

이미 끝난 일들에 대해서.

돌아갈 수 없는 감정들에 대해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늘 제때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이해는

언제나 한 템포 늦게 도착한다.

아마 그것이

성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는 참 많이 외면하고,

자주 미루고,

때로는 모른 척했다.


두려웠고,

아팠고,

무력했다.


그 모든 감정들이

나의 일부였음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제야 나는 알게 된다.

그 시절의 나는

‘이해받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서조차

이해받지 못했던 사람.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의 답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있다.

삶은 늘

이해되지 않아도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해하려는 의지 자체가

이미 치유의 시작이란 것도.


한 번은

스무 살의 내가 쓴 일기장을 꺼내 보았다.

어설픈 문장들,

서툰 감정들.

하지만 그 안엔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때의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 또한 나였으니까.


나는 여전히

이해하는 중이다.

내가 왜 그랬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을 늦게 이해한다.


그건 실수도, 실패도 아니다.

그저 인간의 방식이다.


조금 늦게라도,

제대로 알아가는 것.

그게 인생의 방식이고,

성숙의 속도다.


지금 나는

나를 이해하려

하루에 한 문장씩 써 내려간다.


글은

늦게 도착한 이해의 증거이고,

다시 나를 붙잡는 다리다.


나는 나를 늦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해는

그만큼 오래 머물 것이다.



〈The CCBB-12〉 7화.

이해는 늦게 오지만,

그래서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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