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밀란쿤데라
두 해 전, 새벽의 고요 속에서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무언가 쓰고 싶었다.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카톡을 보내듯 덤덤하게 한 줄씩 적어 내려갔다.
아버지와의 조각 같은 추억들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아버지의 웃는 얼굴을 눈앞에서 본 듯 생생하게 느꼈다.
단어가 문장이 되고, 문장이 감정을 품으며, 그날 새벽은 누구의 방해 없는 나의 것이었다.
이 충만한 기분, 오래 잊고 있던 어떤 감정이었다.
“엄마, 새벽에 안 주무셨어요?”
눈 비비며 일어나는 아들의 말에 나는 조금 머뭇거리며 말했다.
“응, 글을 써봤어. 그냥 메모처럼.”
“한번 봐도 돼요?”
조심스레 건넨 글을 아들은 한참을 읽었다.
그리고 짧게,
“좋은데요. 도전해 봐요.”
그 한마디가 나를 움직였다.
예전, 라디오 사연을 보내고 ‘좋은 생각’에 글이 실렸던 날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쓰는 일이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글을 좋아했던 사람이었구나.
화려하지 않아도, 기교가 부족해도, 마음을 담아 쓰는 글을 꿈꿨던 사람이었다.
브런치스토리를 검색했다.
작가 신청.
겁은 났지만 ‘까짓것’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글 한 편과 자기소개를 보냈다.
결과는 탈락.
조금 무거웠나 보다.
그래,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지.
그렇게 묻어두었던 글쓰기.
그러던 중, 우리 가족의 반려견 ‘별이’가 별이 되던 날.
나는 또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다른 무엇보다 그 아이를 ‘기억’하고 싶었다.
상실을 애도하는 방식 대신, 웃으며 추억하는 방식을 택하고 싶었다.
별이의 사진첩을 만들며,
퇴근 후 본능처럼 이름을 부르며 허벅지를 치는 가족의 모습에 서로 웃으며,
슬픔보다 웃음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브런치스토리에서 ‘작가 승인’이라는 메시지가 왔다.
별이야, 너의 마법이었을까.
나는 그날 이후, 글을 쓰는 순간들이 모두 특별해졌다.
기억은 눈부시게 살아났고,
어떤 날의 슬픔조차도 견딜만한 것이 되었다.
‘참 잘 버텼다’는 마음이 스스로에게 전해졌다.
가족들도 글을 쓰는 나를 보며 함께 웃고, 서로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삶,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글로 남겨지는 시간.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 밀란 쿤데라 -
나는 슬픔 속에서 글을 시작했고,
행복으로 그 여백을 채워가고 있다.
이야기를 적을 수 있는 지금,
삶은 여전히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