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눈빛을 가지고 싶다.
그 눈빛은 살아 있고, 연결되어 있고, '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반대로 힘없는 눈빛은
나를 안타깝게 하고, 불편하게 한다.
내가 눈빛에 신경쓰는 이유는
내 눈빛이 빛났으면 하기 때문일 거다.
내 눈빛이 빛나기 위해서는
잘 자야 하고
해내야 할 일이 있어야 하고
그 일이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어야 한다.
아이들을 대할 때도,
자연스레 눈빛을 먼저 본다.
오늘 7살 남자 아이가,
유치원에서 물놀이를 다녀왔는지 눈을 빨갰지만
사범님인 나를 보는 눈빛은 '궁금, 기대, 신남'으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눈빛에 얼마나 심쿵했는지.. ㅎㅎ
반면 내가 참 좋아하는 우리 민서는 요즘 자꾸 눈에 힘이 없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예전에는 어땠더라.. 어떻게 다시 빛이 돌아왔더라...
기억을 더듬고, 방법을 찬으려 애쓴다.
내가 이렇게 자꾸 아이들의 눈빛에 흔들리는 건,
결국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마음을 주는 사랑에서 시작된 나의 방식 때문이다.
그건 교육자로서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때로 흔들리게도 한다.
오늘 읽은 책에서
'국부론'의 아담 스미스와
'자본론'의 마르크스도
그 사상의 출발점이 같았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인간에 대한 사랑'
마르크스는 '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는 항상 가난한가?'를 질문했고,
아담스미스는 '가난한 사람도 함께 잘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빛을 오래 바라보는 일에서 모든 것이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눈빛은
사람의 현재를 말해주는 언어다.
그 언어를 사랑하는 나는
사람의 현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