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haemyungdan
Dec 10. 2022
작고 낮은 언덕일 뿐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경계 없는 하늘과의 케미때문일 겁니다
한 무리 구름이 떼지어 나타났습니다
소풍 나온 것처럼요
무료했다는 하늘의 속마음일까요?
구름 덕분에 누군가의 표정이 예뻐지겠습니다
이 구름을 보며 세상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구름에서 오르골 소리가 납니다
맑고 느린 리듬에 하염없이 빠져듭니다
행복했던 언덕의 추억이 피어오르며
온전히 휴식의 시간이 됩니다
이렇게 언덕은 늘 무언가를 맞습니다
그리고 보냅니다
부르지 않아도 해를 따라 오고
해를 따라 갑니다
가두어 두는 것이 없습니다
언덕 남서쪽 둘레에는
꼭대기집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오로지 이 집만을 위한 길이 되었습니다
대문이 필요없는 마당 앞에는
아카시아와
골담초와
카네이션과
붓꽃이
때 되면 인사를 합니다
노랗고 빨간 장미가
백합이
군데군데 향기를 더하며
꽃행렬에 줄을 잇습니다
몇해 전부터는 보리수가
검은 자줏빛 열매를 바닥 가득 떨어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다글다글 보리수 열매를 수확할 손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누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심어 놓은 것일까요?
꼭대기집에는
개가 한 마리 삽니다
주인을 향한 심장이 하나 더 있는 듯합니다
저런, 저런!
뒤로 넘어간 귀가 머리에 붙어버렸네요
꼬리는 어찌나 마당을 쓸어대는지요
그리곤 벌러덩 배를 드러내며 긁어 달랍니다
매우 노골적이죠
고양이 다섯 마리도 오고갑니다
밥 때가 되면 꼭 나타나죠
염치는 앞발로 쓰윽 밀어버리고
냐옹의 '냐'를 가늘고 길게 뺍니다
연민에 대한 호소가 짙어 보입니다
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냐옹댑니다
"시끄러워 죽겠네!"
깨달음의 나무
보리수의 주인
여든여덟 할머니가 꼬부라진 허리로 나타납니다
귀찮아 쫓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쫓아지지 않습니다
때마다 먹이를 챙겨주시거든요
해바른 흙마당
개와 고양이들의 재롱을 보며
미소도 짓고
그것들과 대화도 하며
하루를 열고 닫으시거든요
아차!
이 정도의 구름이라면
꽃처럼 개처럼 고양이처럼
할머니의 마음에 담기겠죠!
할머니는 언덕이니까요
햇살 가득한 주말
까치가 짖은들 뭐하겠습니까
자식들의 인기척은 없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외로움의 고개를 넘어갑니다
일상의 더미를 또 넘습니다
'시절이 그런 걸 뭐...'
할머니는 오늘도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게 맞습니다
비운 마음엔 외로움이 씻길 리 없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할머니 마음을 돌봅니다
구름은 참 좋겠습니다
넘어야 할 고개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