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emyungdan Feb 18. 2023

살 수 없는 향기

사람을 읽습니다



2년 전 일이다.



한동안 나는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집사로 사는 느낌이었다. 뜻하지 않은 삶에 부대끼느라 지쳐 사람을 향해 향기를 찾는 일을 포기하고 있었다.

사는 재미도 즐거움도 없던 내게 이른 아침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자기야, 자기 생일이라고 누가 선물 갖다 놨네!"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손에 남편이 예쁜 카드를 쥐여 주었다.

잠을 떨치지 못해 비몽사몽이면서도

' 누가? 선물을?...'



감칠맛 나는 센스쟁이 둘째는 군에 가 있고

남편에게선 강릉이라는 콧바람을 생일선물로 미리 받았으니...

그럼...

케잌으로 생일을 축하하겠다던 우리 첫짼가..



우주의 유일한 존재

오직 단 하나의 향기





핸드메이드 화장품 브랜드인 러쉬 매장 앞을 지날 때면 어떤 독특한 향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곤 했다. 농도는 진했으나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향이었다.

길가에 뒹구는 막돌같은 생김새와는 달리  믿기지 않을 만큼 향이 시원하고 매력적이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어느 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다짜고짜 지금 이 냄새의 제품을 달라고 했더니 직원에게서 뜻밖의 말이 돌아왔다.

"이 냄새는 매장 전체 냄새예요!"

러쉬 매장 냄새가 특정 제품의 압도적 향기가 아니었다.

다양한 향료와 오일이 섞여 특유의 러쉬 매장 냄새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살 수 없는 향기였다.



나에게도 향기가 있었나?

킁킁 냄새도 아니고 엄마의 향기라고 했다.

아들을 통해 처음 듣는 향기라는 말이

러쉬 매장의 첫 경험만큼이나 오감을 깨웠다.

27년 첫째가 어미에게서 체감한 향기는 어떤 것일까?

서툶과 무거움과 엄격함에 과연 향기라는 게 있었을까?



머무르지 않는 아이

더하기의 신념을 묵묵히 쌓아가는 아이

곱하기의 도약을 품고 있는 아이

시늉이 없는 진실한 아이

칭찬과 응원이 몸에 밴 아이

어느새 마음을 채워 주는 아이

이 아이의 심중이 닿는 곳엔 언제나 훈김이 돌지 않았던가



봄의 문턱에 있는 생일을 아들은 향기라는 말로 축복해 주었다.

추운 겨울에 주저앉아버린 저간의 시간들을 잠시 잊게 해 주었다.

향기를 찾아 주어야 봄이 된다는 것을 새 것처럼 배우며

꾸덕꾸덕 말라가던 가슴에 봄의 희망을 일깨워 보았다.



그 동안의 볼품 없는 인생을 저버리지 않고 향기를 입혀 준 아들이 고맙고 또 고맙다.

러쉬 매장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것처럼 나는 아들의 영혼 앞에서 잠시 마음을 멈춘다.

사람의 향기다

살 수 없는 향기다



우주의 유일한 존재

오직 단 하나의 향기








매거진의 이전글 구름을 읽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