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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Dec 25. 2022

2022년 12월, 베고니아의 파도를 타다

부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박람회에서 샀다며 남편이 베고니아를 안고 들어섰다. 짐이 많은 탓도 있지만 그도 그럴 것이 가슴을 받침대 삼아 한 손으로 안고 들어온 베고니아는 한 포기 꽃이라기보다는 한 그루라 해야 할 정도로 베고니아답지 않게 덩치가 컸다. 꽃에 비해 화분이 작아서 더 그렇게 보였고 충분히 지탱되지 않은 베고니아는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베고니아를 장식장 위에 내려놓고 비닐을 벗기니 생각보다 더 무성했고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통기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빽빽한 가지와 상처난 잎 때문에 지저분해 보였고 빨간 색깔은 쌩뚱맞았다.



추워서 안에 들여 놓은 의기양양한 소철과 18년 된 선인장과 아가베 아테누아타의 위엄과 기품을 베고니아는 단박에 휘저으며 공간을 어지럽혔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는 듯한 철없는 우쭐거림이 낭패스러웠다. 마치 색종이 조각을 흩날리던 마술사 부채의 빨간 수술과도 같은 색은 도무지 조화로움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베고니아가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선홍빛을 절반은 따라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벙근 것보다 피어있는 게 대부분이어서 바라보고 있자니 그 강렬함에 현기증이 났다.



그동안 보아 온 베고니아는 이런 게 아니었다.

가장 예쁠 때 길가로 옮겨진 조경용 베고니아는 광택 있고 암팡졌다.

오래 전 제주 식물원에서

끝이 가물거리던 분홍색 베고니아는

지독하게 로맨틱해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고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이라는 낯익은 흥얼거림 속의  베고니아는 계단에 놓여 설렘과 기대와 기다림을 안겨주는 꽃이었다.

내 안의 베고니아는 갑자기 들이닥친 베고니아를 낯설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집에 어울릴만한 분홍색 베고니아는 없었는지 키우는 맛이 나는 어린 것은 없었는지 투덜댔지만 남편의 심장 소릴 들으며 품에 안겨 들어온 베고니아를 어떻게 할 도리는 없었다.

좌우 어긋난 잎처럼 베고니아 초보들의 생각이 맞지 않은 건 알았지만

내 맘과는 달리 남편은 어떤 설렘을 가졌는지 베고니아에 대해 한껏 과열되어 있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무려 화분 네 개가 작은 가지와 잎을 담고 텔레비전 앞에 쪼르르 모여 있었다.

호기심은 남편에게 참을 수 없는 마음이다. 획득한 정보대로 가지치기 삽목과 잎꽂이를 하루만에 해 놓은 것이다.

잎을 꽂아 두면 발근이 되는 특이한 번식 방법이 베고니아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가지와 잎이 정리된 어제의 베고니아는 꽃이 주는 즐거움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었고

꼬마 꽃병에 꽂힌 한 줄기 베고니아가 주방을 사랑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베고니아가 하나하나 특별해져 있었다.

남편이 베고니아 하나로 온 집안에

한바탕 잔치를 벌여 놓았다.

백 점짜리 시험지릍 들고 칭찬의 순간을 기다린 아이처럼 두 손을 비비며 나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남편은 어떤 성취에 흐뭇해져 있었고

새생명 탄생에 대한 기대에 표정은 이미 벅차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베고니아의 변화가 내겐 극적으로 보였다.

뚜렷해진 베고니아의 존재감이 시큰둥했던 내 마음까지 살랑살랑 지휘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보느냐는 확실히 삶의 질과 관계가 있다.

꽃이 훨씬 많은 것을 해냈다.

아들만 있는 집에 예쁜 딸을 얻은 것처럼

남편 얼굴이 전에 없이 펴지고 입가엔 미소가 자주 돌았다. 관심으로 포장된 애정표현이 시시때때로 말랑말랑했다.





일어나자마자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은 작은 토분 앞에 모여 유심히 변화를 관찰하는 일이다. 그리고 베고니아를 응원하는 일이다.

떨어진 큰 화분의 베고니아 꽃잎을 주워 한잎 한잎 흙 위에 덮어주며

따뜻한 술렁거림이 있는 12월의 그루브를 타 보는 것이다.

베고니아는 공기정화뿐 아니라 우리 부부의 마음까지 정화시켜 주는 것이 분명했다.

믿기지 않지만 요즘 우리는 완벽하게 하나가 됐다.



베고니아가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다.

'무엇을'보다 '어떻게'에 집중하니 새로움이 더 쉬워진다.



남편은 무엇을보다 어떻게에 늘 집중했다.

짊어진 상황을 극복해야 했으니 남편의 인생이 어떻게의 반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삶의 전략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남편에겐 삶의 본능이다.



어떻게에 집중해야 하니 이 궁리 저궁리가 생활의 기본이다. 거기에 호기심까지 더해지니 어떻게가 점점 확장된다. 어떻게의 하나가 어떻게의 다음 그리고 다음을 연쇄적으로 불러일으킨다. 자연스럽게 생활의 저변이 확대되고 삶의 지평이 넓어졌다.

남편의 주부 9단과 같은 살림의 지혜,

맥가이버 같은 생활의 지혜, 그리고 끈질기고도 존경스런 일머리는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스스로 터득하고 쌓은 눈물과 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경험의 달인이랄까! 값지다!



그러나 어떻게의 과정이 늘 즐거울 수만은 없다.

빛 못지않게 그림자를 각오해야 할 때가 있다.

남편은 어떻게를 묻는 법이 없다.

그동안 축적된 어떻게에 대한 높은 효능감이 오히려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고 효율을 떨어뜨릴 때가 있다.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를 물어보자고 제안하거나 자신에게 고민 없이 어떻게를 묻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경직된 일면에 상대는 역시 당혹스럽다. 대부분 그것은 나의 몫이다.



지금 우리에겐 왜 이런 밑거름이 없을까?

어떻게의 발판이 왜 우리를 이끌지 못했을까?

어지간히도 반복했지만 어떻게의 단계에서 우리는 왜 실패했을까?

어떻게를 통해 긍정적인 상호작용은 어려운 것일까?

우리 부부가 어떻게에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할 순간이다

베고니아의 모습을 통해 헤아려야 할 시간이다.



함께 살아온 세월이 적지 않으니 우리의 결혼나무도 무성하다.

그 결혼나무를 세우고 있는 부부라는 우리의 화분은 결혼나무를 지탱해 줄 만한 크기였는지 다시 곱씹게 된다.

결혼나무의 광택은, 개화는, 기울기는 또 어떤지...



우리에게도 필요했던 건 근본적인 환기이다.

자꾸만 뻗치는 깔끄럽고 허섭스레기 같은 삶의 여줄가리를 잘라내고

대줄가리의 면모를 다듬었어야 했다.

그래야 결혼나무가 아름드리로 곧게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결혼 환경에 어울리는 알맞은 크기와 위치로 그것의 쓸모와 개화의 아름다움을 찾아야 했다.

다듬지 않은 각자의 모습은 상대에게 아찔함을 안겨주지 않았던가

따라내 버리고 싶은 지나친 색깔은 

진절머리나는 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는

상대와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은 개인의 모습으로만 무성하지 않았는지

생각이 많아지고 반성이 깊어진다.



무엇을에 대한 선택권이 별로 없었으니

상황에서 얻게 된 것들은 남편에게 언제나

최고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예찬한다.

선물인 것처럼 마냥 그냥 스스로 행복하다.

물욕이 없으니 주어진 것은 고맙고

없어도 그만이다.

그로 인한 갈증그로 인한 실망도 남편에게서  본 적이 없다.

인생 별 거 없다. 물 흐르듯이 그저 흐를 뿐이다.

오늘도 남편은 마이 웨이를 즐겁게 누릴 뿐이다.



문득 마음이 울렁거린다.

머리가 반백인 남편이 119를 불러야 할 것만 같은 화초를 사 가지고 와

자기 취향이라는 걸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을 토닥여 줄 무언가를 원했다. 지름길이 없어 돌아오느라,

평길이 없어 고군분투하느라

있는 줄도 몰랐던 꼬깃꼬깃한 마음 하나를 꺼내 베고니아를 통해 표현했다.

뜻밖의 휴식을 원하고 있다.

꽃만 봤다.

남편을 보지 못 했다.



피는 꽃보다 지는 꽃이 많다.

사온 베고니아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꽃이 떨어지고 바삭하게 말라 결국 거름으로 버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베고니아는 우리에게 뜻밖의 거름이 되었다.

베고니아는, 우리는,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12월의 값진 메시지로

크리스마스의 여운을 더해줬다.

몇 주간 정서적 풍요를 누렸고

남편의 마음 한 줄을 읽고 간격을 좁혀 봤다.



남편이 좋아했으니 됐다.



베고니아에 물을 준다.

우리의 결혼나무에 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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