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의 저녁,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들었다.
두툼한 앨범의 표지가 바래 있었다. 손끝에 닿는 낡은 비닐의 감촉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 속엔 다섯 살 무렵의 내가 있었다. 옆에는 내 동생, 아직 젖내가 가시지 않은 얼굴 아빠손을 잡고, 나는 친할머니 손을 잡고
창경원에서 찍은 남매 사진이었다.
햇살이 부서지던 봄날, 할머니는 우리 남매를 손잡고 데리고 나가셨다.
비행기를 타고 찍은 또 한 장의 사진에는 내 동생 혼자서 찍었다.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그 아이의 눈빛은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된 듯지금 다시 보면 너무나 맑고도 해맑은 귀여운 내 동생
그 시절, 나는 ‘불쌍하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친할머니의 한탄소리였다.
엄마가 아버지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가던 중, 남동생 겨우 스무날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세 살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날 이후 우리 집의 공기는 늘 조금 차가웠다.
할머니는 그런 우리를 안아 키워주셨다.
그때의 나는 할머니 품이 곧 세상이었고, 그 손끝이 어머니의 온도였다.
그러나 할머니가 “불쌍한 것들…” 하고 중얼거리실 때마다, 그 말이 가슴을 베었다.
나는 불쌍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창경원 벚꽃길을 걸을 수 있었던 아이였다.
시간은 흘러갔다.
할머니의 주름은 점점 깊어졌고, 나는 학교를 다니고, 세상으로 나아갔다.
할머니는 늘 쾌종시계를 갖고 싶어 하셨다.
“오라는 데는 없지만, 갈 곳은 많다.”
그 말은 이제야 이해된다.
그때의 할머니는 오십 대 넘으셨지만, 마음만큼은 아직 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다.
맛있는 순대로 생일선물을 주시던 그분의 손길.
그 정성이 그때는 너무 당연해서, 나는 고마움을 몰랐다.
할머니는 일곱 남매의 어머니였다.
둘째 아들이던 아버지가 상처를 입고, 그 빈자리를 메우듯 우리 남매를 키워주셨다.
아버지는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다.
사진 속에서 아버지는 흰 셔츠에 단정한 머리, 그리고 어딘가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때의 아버지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어린 두 남매를 두고, 젊은 나이에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자.
그 마음속엔 말로 다 못한 허무와 책임감이 뒤섞여 있었으리라.
나는 이제 60대 중반이다.
사진 속 아버지보다도, 그 옆의 친할머니보다도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할머니는 작고하셨고,
아버지는 93세가 되셨다
하지만
오늘 거울 속 내 얼굴에서, 그들의 표정을 본다.
아버지의 눈썹, 할머니의 입매, 그리고 그 눈가의 잔주름까지.
나는 그들의 시간 위를 걸어오며 살아 있었다.
오늘 낮, 나는 카스텔라를 사 들고 친정을 다녀왔다.
아버지 손에 카스텔라 상자를 건네며 “이거 맛있어요.” 하고 웃었더니,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잘 왔다.” 하셨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묘하게 울컥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손녀였고,
한때 불쌍하다고 불렸던 그 아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사진을 보았다.
창경원의 벚꽃은 흑백 필름 속에서도 환했다.
비행기를 탄동생의 모습이, 그 시절의 하늘처럼 쓸쓸하고도 푸르렀다.
‘그때가 시절인연이었구나.’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시간은 흘러 사람은 늙고 세상은 변하지만,
사진 속 그들은 여전히 젊고, 따뜻하고, 살아 있다.
할머니의 손길, 아버지의 침묵, 그리고 어린 내 눈빛이 모두 한 장의 사진 안에서 숨 쉬고 있다.
그것이 인연이고, 그것이 삶의 흔적이다.
나는 이제 그때의 할머니가, 그때의 아버지가 되어,
또 다른 세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속의 시절인연은 단지 과거가 아니다.
그건 지금도 나를 지탱하는 힘이며, 내가 세상과 이어지는 가장 오래된 끈이다.
할머니의 말투, 순대 냄새, 쾌종시계의 똑딱임이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 기억들이 내 안에서 되살아날 때마다, 나는 더 이상 불쌍하지 않다.
나는 사랑받았던 아이였고, 지금은 그 사랑을 되물려줄 나이가 되었다.
오늘 밤, 창문 너머로 달빛이 비친다.
달빛 아래 앨범이 열려 있다.
사진 속 할머니가, 아버지가, 그리고 어린 내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
그것이 바로 시절인연이다.
스쳐 가는 듯하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는 인연.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나를 품고 있는, 오래된 사랑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