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오는 날에

by 안순나



첫눈이 오기 전, 세상은 늘 자신도 모르게 고요를 연습한다.

하늘은 흰빛을 품기 위해 오래도록 숨을 고르고, 나무들은 가지 끝에서 알 수 없는 떨림을 닦아낸다.

그 무언의 예행연습이 끝나는 순간, 마침내 하늘은 자기가 품고 있던 가장 순수한 마음을 아래로 내려보낸다.

바로 첫눈이다.


첫눈은 언제나 천둥보다 먼저 마음을 울린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오지만, 귀 속이 쿵 내려앉는 것처럼 가슴에서 천둥이 친다.

이유 없이 가슴이 저릿한 것도, 오래전 무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도 모두 첫눈이 들어오는 마음의 문이 원래부터 그렇게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날이면 나는 내가 나에게 대답하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말들이 한꺼번에 쌓여오는 듯해 잠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가슴이 젖어드는 날이 바로 첫눈 오는 날이다.


첫눈은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어떤 상실을 겪기 전이었는지, 혹은 어떤 희망을 품기 전이었는지조차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첫눈은 늘 나보다 먼저 나를 알아보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잊고 살아도 첫눈은 잊지 않았고, 나는 멀리 걸어가도 첫눈은 내 발자국을 따라왔다. 첫눈은 늘 묻는다.

“너는 괜찮으냐”라고. “이만하면 충분히 견디고 있는 거냐”라고. 눈송이가 부서지며 빛나는 작은 순간들이 나를 만질 때마다 나는 그 질문을 들은 듯 서늘하고 따뜻하다.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도 첫눈이 오는 날이다.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사람,

오래전 어쩌다 헤어진 사람,

혹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마음 어딘가에 흰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사람까지 모두 불현듯 떠오른다.

첫눈은 맑은 슬픔을 데리고 오기 때문이다. 맑은 슬픔은 더럽혀지지 않은 슬픔이고, 내 안에 오래 머물면서도 나를 다치게 하지 않는 슬픔이다.

첫눈의 슬픔은 사람을 품고 회복시키는 슬픔이다.

그래서 나는 첫눈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말한다.

“오늘은 슬퍼도 괜찮다”라고.

“오늘은 그리워도 괜찮다”라고.


첫눈이 천천히, 아무 소리 없이 내리는 걸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은 잠시 멈춘 듯하다. 멈추는 순간, 나는 내 마음의 작은 방 한편에서 오래 닫아두었던 서랍을 천천히 연다.

무언가를 꺼내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서랍을 열어 공기가 드나들게 하고, 잠시 쉬게 하는 것뿐이다.

첫눈은 마음속 서랍의 환기창과 같다.

내가 정리하지 못한 감정들이, 내가 버리지 못했던 기억들이, 내가 붙들지 못했던 희망들이 하얀 공기를 타고 드나든다. 마치 세상이 나와 함께 숨을 고르는 것처럼.


첫눈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바꾸는 힘을 가진다.

길에 떨어진 낙엽 위에도, 오래된 건물의 벽돌 위에도, 가로등 아래 쌓여가는 작은 눈 위에도 같은 흰빛이 내려앉는다.

삶은 원래 이런 것이라는 듯이, 그저 가만히 덮어주고 감싸준다.

첫눈은 꾸짖지 않고, 요구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는다.

말없이 비추고, 말없이 덮고, 말없이 용서한다.

그래서 나는 첫눈을 볼 때마다 마음 한가운데서 작은 불빛이 켜지는 것 같아

멈춰 서게 된다.


사람은 평생 몇 번의 첫눈을 만날까.

물론 세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세어보지 않았다.

대신 나는 첫눈이 왔다는 사실만으로 올해를 살아온 시간들이 갑자기 소중해지는 깨달음을 얻는다.

어떤 해는 너무 아팠고,

어떤 해는 너무 지쳤고,

어떤 해는 너무 외로웠다.

하지만 첫눈은 잊지 않고 내려온다.

마치 “그래도 살아냈구나” 하고 조용히 쓰다듬듯 내려온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슬픔마저도 한 걸음 물러나 앉아 조용히 빛을 쬐는 날이다.


어떤 이에게는 첫눈이 사랑의 시작을 떠올리게 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떠나간 이의 뒷모습을 불러오게 한다.

그러나 나에게 첫눈은 언제나 ‘막연한 그리움’이다.

그리움의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그리움의 얼굴을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그리움이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첫눈의 그리움은 어딘가에 반드시 따뜻함을 품고 있다.

그 따뜻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지만, 마음 한구석을 밝히는 작은 등불처럼 오래오래 남아 있다.


첫눈은 나에게 말한다.

“너는 늘 무언가를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아직 잃지 않은 것이 있다”라고.

“아직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이 있고, 아직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라고.

이 말이 위로인지,

다짐인지,

혹은 단순한 사실의 확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첫눈이 내리는 순간에만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첫눈은 나를 설득하지 않지만, 대신 내 마음이 스스로를 설득하게 만든다.


바람이 불어 눈송이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내 안에서 오래 흔들리던 의미들을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건네지 못했던 말, 보내지 못하고 지닌 채 살았던 편지 같은 마음들. 첫눈은 그 마음들을 밖으로 꺼내어 다치지 않게 닦아준다.

눈송이는 그렇게 마음을 정화시키는 일에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려오고, 녹아 사라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첫눈은 더 귀하다.

단 한 번의 순간을 위해

오래

준비한 하늘의 선물이다.


첫눈은 결국 ‘지나가는 것들’의 의미를 일깨운다.

이 세상에 머무는 것보다 지나가는 것이 더 많은데, 우리는 지나가는 것들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위로를 받는다.

첫눈이 스치듯 지나가듯, 우리의 슬픔도 그렇게 지나간다.

우리의 그리움도, 우리의 고독도, 우리의 사랑도. 스치는 것들이 남기는 자국은 깊숙이 남지만, 그 자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처가 아니라 무늬가 된다.

첫눈은 그 무늬를 보여준다.

“너의 시간은 이렇게 아름답게 겹겹이 쌓여 있다”라고.


오늘, 첫눈이 내린다.

천둥처럼 마음이 울리고,

이유 없이 코끝이 시리고,

막연한 그리움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그리움을 탓하지 않는다. 그리움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아프게 하는 그리움이 아니라 따뜻하게 감싸는 그리움, 끝을 알 수 없는 막연함 속에서도 나를 다독여주는 순한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첫눈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오늘만큼은 너 자신에게 착해져도 좋다.”

그리고 나는 그 말 하나만으로도 하루를 온전히 건너간다.


하얀 첫눈이 쌓인 세상 위로 걸으며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첫눈은 그저 눈이 아니다.

살아온 시간에 대한 조용한 기도이며,

살아갈 시간에 대한 은은한 격려이다.


첫눈이 오면,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직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구나.”

“나는 아직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구나.”

그리고 “나는 아직 살아 있구나.”


오늘의 첫눈은 내 마음의 눈부신 여백이다.

그 여백 위에서 나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내일로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