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숏츠에 종종 달리는 댓글에서 보이는 말이 있다.
“위험에 처해 있다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평소 이미지와 다른 연예인이 색다른 행동을 하거나
조금은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는 사람이 나오면
댓글에 장난처럼 달리는 말이다.
진지할 것 없는 농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한 말.
그런데 그 말을 곱씹다 보니
문득 외국에서는 정말로
‘위험에 처했을 때 하기로 약속된 행동’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외국에는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순간을 대비해
손짓,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미리 정해 두는 문화가 있다.
예를 들어 손바닥을 보여준 뒤
엄지를 접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덮는 동작이 있다.
멀리서 보면 별것 아닌 손짓 같지만
그 의미는 명확하다.
“지금 위험하다. 도와 달라.”
바에서는 술 이름으로 도움을 요청한다.
“엔젤 샷을 주세요.”
그 한마디에 직원은 상황을 알아차리고
필요하다면 택시를 불러주거나
경찰을 부르기도 한다.
약국이나 가게에서는
“안젤라를 찾고 있어요.”
그 말이 위기의 암호가 된다.
더 오래된 방식도 있다.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다시 짧게 세 번.
SOS.
빛으로, 소리로, 행동으로 보내는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절박한 신호다.
이 신호들의 공통점은
크게 외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 위에 세워진 약속들이다.
그래서일까.
“위험하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라는 농담이
마냥 웃기게만 들리지 않았다.
웃음으로 포장됐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불안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섞여 있는 듯도 했기 때문이다.
요즘 나온 기사 중 하나가 오래 눈에 남았다.
수십 년간 알코올 중독 남편의 폭행에 시달려 오던 아내가
만취 상태의 남편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사건이었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면
결국 부인이 피해자가 되었을 것이라며
정당방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내 시선을 붙잡은 것은
댓글 보다 판사의 판결문이었다.
오랜 시간 폭력을 당하면서도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는 답답함을 표현한 문장이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폭력 안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너무 쉽게 던져진 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정말로 당사자는
단 한 번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말로 하지 않았을 뿐
다른 방식으로는 표현하고 있지 않았을까.
무심코 흘린 하소연
자주 드러난 멍 자국
점점 사라진 웃음과 관계들.
그 모든 것이 신호는 아니었을까.
혹은 용기를 내어 신호를 보냈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건 아닐까.
사람들의 방관과 외면 속에서
결국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마음이
조용히 꺾여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위험하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웃자고 하는 농담이지만
생각해 보면 참 씁쓸한 말이다.
우리는 너무 분명한 구조 신호만을 기다리다가
그보다 작은 신호들은
농담처럼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당근을 흔들든
손짓을 하든
말 한마디를 흘리든
중요한 건 신호의 크기가 아니라
그 신호를 알아보려는
우리의 관심이 필요한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