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by 진청단
Gemini_Generated_Image_9bbhcf9bbhcf9bbh.png

요즘 숏츠에 종종 달리는 댓글에서 보이는 말이 있다.


“위험에 처해 있다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평소 이미지와 다른 연예인이 색다른 행동을 하거나

조금은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는 사람이 나오면

댓글에 장난처럼 달리는 말이다.


진지할 것 없는 농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한 말.


그런데 그 말을 곱씹다 보니

문득 외국에서는 정말로

‘위험에 처했을 때 하기로 약속된 행동’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외국에는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순간을 대비해

손짓,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미리 정해 두는 문화가 있다.


예를 들어 손바닥을 보여준 뒤

엄지를 접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덮는 동작이 있다.

멀리서 보면 별것 아닌 손짓 같지만

그 의미는 명확하다.


“지금 위험하다. 도와 달라.”


바에서는 술 이름으로 도움을 요청한다.

“엔젤 샷을 주세요.”

그 한마디에 직원은 상황을 알아차리고

필요하다면 택시를 불러주거나

경찰을 부르기도 한다.


약국이나 가게에서는

“안젤라를 찾고 있어요.”

그 말이 위기의 암호가 된다.


더 오래된 방식도 있다.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다시 짧게 세 번.

SOS.

빛으로, 소리로, 행동으로 보내는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절박한 신호다.


이 신호들의 공통점은

크게 외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 위에 세워진 약속들이다.


그래서일까.

“위험하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라는 농담이

마냥 웃기게만 들리지 않았다.

웃음으로 포장됐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불안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섞여 있는 듯도 했기 때문이다.


요즘 나온 기사 중 하나가 오래 눈에 남았다.

수십 년간 알코올 중독 남편의 폭행에 시달려 오던 아내가

만취 상태의 남편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사건이었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면

결국 부인이 피해자가 되었을 것이라며

정당방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내 시선을 붙잡은 것은

댓글 보다 판사의 판결문이었다.

오랜 시간 폭력을 당하면서도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는 답답함을 표현한 문장이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폭력 안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너무 쉽게 던져진 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정말로 당사자는

단 한 번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말로 하지 않았을 뿐

다른 방식으로는 표현하고 있지 않았을까.


무심코 흘린 하소연

자주 드러난 멍 자국

점점 사라진 웃음과 관계들.

그 모든 것이 신호는 아니었을까.


혹은 용기를 내어 신호를 보냈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건 아닐까.

사람들의 방관과 외면 속에서

결국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마음이

조용히 꺾여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위험하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웃자고 하는 농담이지만

생각해 보면 참 씁쓸한 말이다.

우리는 너무 분명한 구조 신호만을 기다리다가

그보다 작은 신호들은

농담처럼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당근을 흔들든

손짓을 하든

말 한마디를 흘리든

중요한 건 신호의 크기가 아니라

그 신호를 알아보려는

우리의 관심이 필요한 건 아니었을까.

작가의 이전글일방적인 믿음의 위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