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낼 용기

by 진청단

상대가 화를 낸다.

소리를 지르고, 패악질을 부린다.

멀리서 보는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화가 많이 났나 보다.’

‘상대가 무슨 잘못을 했나?’


하지만 그 공격을 받는 사람은 안다.

내가 잘못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어떤 이유가 있든

이렇게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것도.


그런데 그런 일이 자꾸 반복된다.

심사가 틀리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다 쏟아낸 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안하다며 싹싹 빈다.


그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분명 상처받았는데

미안해하는 약한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 마음을 받아준다.


‘그래, 이번엔 정말 반성한 걸지도 몰라.’

그렇게 또 한 번 넘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그 사과는 반성이 아니라

단지 불편한 공기를 잠시나마

수습하기 위한 임시응변이었단 걸.


그런 일이 반복되면

상대의 분노와 슬픔에 무뎌지기 시작한다.

이해하려는 마음과 체념이 뒤섞여

결국 나 자신을 설득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그래, 저 사람도 힘드니까 그럴 수 있지.’


그 말은 상대를 향한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약속을 받아내도 소용없다.

같은 상황이 오면, 결국 같은 일이 반복된다.

안되겠다는 생각에 상대에게 똑같이

소리도 질러보고, 외면도 해보지만

끝은 늘 상대의 사과로 마무리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그 원인을

상대의 환경이나 성격에서 찾기 시작한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가.

어릴 때 상처가 있어서

화가 나면 절제를 못하는 거겠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든

어떤 상처를 안고 있든

나에게 화를 내고 행패를 부리는 건 별개다.


그럼에도 당사자는

상대의 사연을 자꾸 집어넣어

비정상적 행동을 이해하려 한다.


그건 어쩌면

일종의 '자기 보호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상대로 인해 무너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자기 위로일 수도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 말은 사실

상대를 위한 이해가 아니라

나를 위한 변명일 뿐이다.


'나에게 감히 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럴 수 없다'는

심리가 작용한 게 아닐까.

상대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며 스스로를 지키려는 심리.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정작 지켜야 할 건 나 자신인데

자꾸 상대를 먼저 지키게 된다.


가깝다는 이유로

한때 소중했다는 이유로

이번엔 다를 거라는 기대를 품고

다시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하지만 상처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반복된다.

화해 뒤의 고요는 잠시뿐이고

그 사람은 또다시 화를 내고

그럴 때마다 다른 이유를 찾는다.


‘이번엔 정말 힘들었겠지.’

‘내가 조금만 더 이해해주면 나아질지도 몰라.’

그렇게 조금씩

자존감이 깎이고 마음의 경계가 무너진다.


만약 지금 이런 상황에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이제 그만 끝내!’


물론 이런 관계는 가까운 사이에서 자주 일어난다.

연인, 부모, 형제, 친구, 직장 동료….

쉽게 끊어 내지 못할 관계들이다.


하지만 그저 참고 인내하며 버티는 건

사랑도, 가족애도, 우정도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에게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더는 그 관계 안에서

‘나’로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마음은 피로에 젖고

자존감은 바닥까지 내려앉는다.


나중엔 생각하게 된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내가 잘못했나?’

그렇게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자신에게 생채기를 내기 시작한다.


결국 마지막엔 회복할 수 없는 상처와 혼란

사람에 대한 깊은 불신만이 남는다.


그리고 마음은 점점 닫혀간다.

더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내어주지 못하고

누군가 다가오면 경계부터 하게 된다.


정말로 자신을 지키는 일은

끝까지 참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히 틀린 것을

‘끊어낼 용기’

그 결단이야말로 자신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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