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다’의 반대말은?

by 진청단

‘흔하다’는

‘별로 귀하거나 특별하지 않다’는 뜻을 지닌다.

하지만 한 번 흔한 것이

영원히 흔한 채로 남는 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며 진가를 드러내기도 하고

세상의 변화로 수요가 늘고

공급이 줄면 귀해지기도 한다.


한때 흔하던 오징어는 이젠 귀한 음식이 되었고

엄마의 손맛이던 생태탕은

식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예전엔 아무렇지 않게 먹던

달걀, 김, 감자, 멸치 한 줌도

이젠 값이 올라 조심스레 사야 하는 시대다.

흔하던 것들이 하나둘 귀해진다.

시간이 그 가치를 다시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예전에는 귀했는데,

이젠 너무 흔해져 버린 것들도 있다.

바로 사진이다.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필름 값을 아끼고

현상소 앞에서 두근거리며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휴대폰만 들어도 하루에도 수십 장의 사진이 남는다.


바나나, 사과, 키위 같은 열대 과일도 귀했다.

어릴 적 아파 누워 있으면 엄마가 동생들 모르게

품안에 넣고 온 바나나를 건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서울에는 무엇이 흔할까?

너무 방대해서 뭐가 있을까 하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서울에서 가장 흔한 건 사람이다.

맛집이라 불리는 곳이라면 기다림은 기본이고

사람들은 그 기다림조차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인다.


복잡함 속에서도 묘한 질서가 있고

혼잡함 속에서도 나름의 평화가 있다.

한강물이 순서대로 흘러가듯

사람의 흐름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시하곤 한다.

건강한 사람에겐 건강이 흔하고

부자에게는 돈이 흔하다.

인기가 많은 사람에겐 친구가 흔하고

장사가 잘되는 가게엔 손님이 흔하다.


그렇게 ‘흔한 것’에 둘러싸이면

소중함을 잊기 쉽다.


언제나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흘려보낸다.


늘 곁에 있으니 내일도 있을 거라 믿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어느 날, 단골로 북적이던 가게가 문을 닫고

익숙하던 간판 자리에 낯선 이름이 걸린다.

언제든 만나 웃을 수 있을 것 같던 친구는

점점 연락이 뜸해지고

그 사이 계절은 몇 번이나 바뀌어버린다.


건강도 그렇다.

늘 내 몸이니까 당연하다고 믿지만

아침에 눈을 뜨는 일

두 다리로 걸어 나가는 일

그 모든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건강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늘 그 자리에 계실 것 같던 부모님도

어느새 등이 굽고 걸음이 느려진다.

유일한 내편이었고

조용히 곁을 지켜주던 그 온기가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문득, 가슴을 저리게 한다.


과연 ‘흔하다’의 반대말은 ‘귀하다’일까.

사전상 의미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흔한 것의 진가를 알아보는 순간

‘흔하다’와 ‘귀하다’는 같은 말이 된다.


무심히 지나쳤던 평범한 하루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과 시간들이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모두 귀해진다.


당장이라도

주변의 ‘흔한 것’을 다시 바라보자.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그 평범함 속에

가장 귀한 것들이

숨죽여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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