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쉐어하우스에 산다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호주에서는 쉐어하우스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작게는 4~6명이 사는 집부터 많게는 20명이 넘게 사는 집까지 규모도 천차만별이다.(8인 1실 팩패커스의 경우 한 건물에 백 명이 넘게 살기도 한다.)
그런 쉐어하우스에 산다는 건 뭐랄까.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나누고 함께해야 한다. 나는 태생이 무던한 성격이라 조금 불편한 상황도 그러려니 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본인이 예민한 성격인데 쉐어하우스에 살지 고민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재고해 보는 것이 좋다.
딱 봐도 불편할 것 같은 것부터 생각지도 못한 불편함까지 모든 것이 당신을 괴롭게 할 수 있다. 화장실, 부엌 같은 경우는 당연히 불편하다.
일 끝나는 시간들이 비슷해 저녁 시간엔 부엌이 항상 분빈다. 조금 적응을 하면 한 번에 2-3인분씩 요리해놓고 데워 먹기만 하거나 부엌에 사람이 몰린 틈을 타 얼른 먼저 씻을 수도 있다. 각자 루틴을 만들고 그 루틴을 블럭처럼 끼워맞추면 부딪히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
샤워를 하기 위해선 또 얼마나 전쟁인가. 평소 샤워하기 귀찮다고 소파에 앉아 한 시간 동안 뭉그적 거리던 건 상상할 수 없다. 화장실에 자리가 난다? 바로 씻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될지 모르고 이르면 새벽 5시에 일어나야 되는 상황에 샤워를 위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은 정말 최악이다.
그리고 샤워야 그래도 기다리면 된다지만 당장 볼일을 보고 싶은데 안에서 샤워라도 하고 있으면 세상을 원망하게 된다.
그 밖에 예상치 못했지만 정말 불편했던 점은 쓰레기통이 집 밖에 있다는 것이다. 보통 쉐어하우스에 쓰레기통을 여러 개 두게 되면 관리도 어렵고 벌레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부엌이나 화장실에만 두고, 본 쓰레기통은 밖에 두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 부엌이나 화장실에도 쓰레기통 하나 없기도 하다.
내가 지냈던 쉐어하우스는 부엌에 하나, 집 밖에 하나 있었고 덕분에 자잘한 쓰레기가 생길 때마다 집 밖까지 나가야 했다.(거기다 문은 항상 자동으로 잠기기 때문에 열쇠를 안 가지고 나오면 집에 못 들어가는 수가 있다.) 이런 삶을 살다 보면 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드는지 체감할 수 있다. 인공눈물을 넣고, 치실을 쓰고, 화장솜을 쓸 때마다 집 밖에 나가서 쓰레기를 버려야 된다고 상상해 보자.
부엌에 쓰레기통이 없을 경우 더 심각하다. 참치캔을 까고, 계란을 까고, 채소를 손질하고, 포장된 고기를 뜯을 때마다 쓰레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쓰레기가 나올 때마다 밖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가야 하는 건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다.
그리고 쉐어하우스마다 기본으로 제공하는 물품이 다른데 내가 있었던 곳은 주방세제, 식기, 주방도구 등 주방용품은 공용이었지만 핸드워시, 화장지 등은 개인물품을 써야 했다. 개인물품을 쓰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문제는 쓸 때마다 방에서 가져가야 한다는 게 큰 문제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화장지와 핸드워시를 챙겨가야 된다고 상상해 보자. 아무리 급해도 방에 들려서 화장지를 챙겨가야 된다. 물론 화장실엔 수건도 없다. 손을 씻으면 방까지 가서 내 수건을 써야 한다. 샤워할 때마다 샤워용품을 다 챙겨가야 되는 건 너무 당연해서 크게 불편하다고 느낄 것도 아니다.
쉐어하우스에 산다는 건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사소한 것도 있을 자리에 있지 않고 매번 꺼내고 치우길 반복한다.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한정적이고 대부분 선반 한, 두 칸 정도가 나에게 주어진 수납공간이다. 그렇게 최소한의 것으로 부지런히 살아가야 하는 삶이다.
매번 요리를 할 때마다 식용유, 소금, 후추까지 선반에서 꺼내와야 하고, 요리가 끝나면 내가 쓴 재료들을 다시 다 넣어놓고, 주방도구들도 바로 설거지해서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밥을 다 먹은 후 설거지도 바로바로 해야 한다. 물론 말했다시피 배달도 외식도 없으니 매번 요리를 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재밌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너무 좋은 탓이다. 회사에서도 일이 힘들더라도 사람들이 좋으면 버틸 수 있듯이 생활하는데 조금 불편함이 있더라도 같이 지내는 친구들이 좋으니 재밌게 생활할 수 있었다. 물론 다들 위생관념이 비슷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공용공간을 깨끗이 쓰는 친구들인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인 친구 A는 항상 밝게 웃는다. 어릴 때 리듬체조를 한 영향으로 매일 저녁 스트레칭 겸 운동을 한다. 물구나무를 선 채 다리를 일자로 벌릴 때면 처음 보는 친구들마다 감탄의 박수를 보낸다. 한 번씩 운동 선생님이 되어 친구들의 운동을 코치해 주는데 마무리로 해주는 마사지가 기가 막혀 아직도 그 손맛을 잊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다.
말레이시아인 친구 C와 L은 함께 호주에 왔다. 둘은 학생 때부터 친구로 말레이시아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에 다니다 둘 다 퇴사 후 호주로 왔다. C는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을 좋아해 나를 항상 언니!라고 부르며 가끔 한국어를 물어보곤 했다. 그리고 카드게임을 좋아해 한 번씩 다 같이 술을 마시면 카드게임 사회자를 자청했다. L은 미소가 정말 예쁜 친구다. 항상 웃고 다니는 데다가 웃음 장벽이 낮아 누가 조금 웃기면 눈물까지 흘리며 웃어 주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대만인 친구 D는 핫걸 그 자체다. 서핑이 취미고 라이프가드 자격증까지 있는 멋있는 친구다. 처음 만났을 때 영어 발음이 거의 원어민에 가까워 유학파인 줄 알았더니 아니라고 해서 크게 놀랐었다. 알고 보니 국내에서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었고 호주에 나와서도 밤마다 화상통화로 튜터링을 받으며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는 친구였다. 호기심이 많고 모험을 좋아해 가끔 하이킹을 가면 혼자 이상한 곳까지 올라가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태국인 친구 S는 항상 나를 언니~~라고 부르고 다녔다. 이 친구를 시작으로 하우스의 거의 모든 친구들이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한국인은 나 한 명이었고 실제로 내가 거의 가장 연장자에 가까웠으니 적절한 호칭이었지 싶다.
태국인 친구 Y는 정말 웃긴 친구다. 이 친구가 처음 왔을 때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어 소심한 성격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날. 다이닝룸에서 그 친구가 무슨 얘기를 하는데 나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바닷가 근처에 놀이터가 하나 있는데 미끄럼틀을 타다가 거꾸로 타면 재밌을 것 같아서 거꾸로 탔는데 멈출 때 잘못해서 이빨이 부러졌다는 거다. 응급실을 갔는데 이건 덴탈 클리닉을 가야 된다고 해서 다음 날 덴탈 클리닉으로 가서 이빨을 때웠다는 얘기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영어를 잘못 알아들은 건가? 어릴 때 얘기를 하는 건가? 혼란스러워하니 자기가 올린 인스타 릴스를 보여주었다. 실제로 미끄럼틀을 타다 이빨이 부러지고 병원에 갔다 덴탈 클리닉에 가서 이빨을 때운 것까지 영상으로 아주 깔끔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 친구는 이빨이 깨져서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다닌 것이다. 너무 어이없고 황당한데 너무 웃겨서 다 같이 한참을 깔깔 웃었다. 참 골 때리는 친구다 생각했는데 알수록 정말 웃기고 유쾌하고 투명하고 좋은 친구였다. 이 친구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혼자 속으로 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많이 친해져 지금도 함께 다닐 정도로 깊은 인연이 됐다.
친구들의 반의 반도 소개하지 못했지만 여기까지만 하자. 이런 친구들과 함께 사니 어찌 생활이 즐겁지 않겠는가. 특히 내 소심한 성격에도 먼저 다가와 주는 친구들이 있어 너무 고마웠다. 친구들 덕분에 쉬는 날 혼자 집에만 있었을 내가, 근처로 하이킹도 가고, 차를 렌트해 인근 도시로 여행도 가고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왁자지껄한 여고 분위기도 참 좋았다. 생일이면 롤링페이퍼를 쓰고 생일파티를 하는데 생일 파티를 할 걸 너도 나도 다 알면서도 열심히 숨어서 롤링페이퍼를 쓰고 몰래 파티를 준비하는 뻔뻔한 긴장감이 좋았다.
송별회마다 하는 바비큐 파티는 1/N 해서 고기를 실컷 먹는 날이 되었다. 나중엔 갑자기 떠나게 된 친구가 부담스러우니 파티는 괜찮다고 해도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고 마음대로 파티를 진행했다.
보통 태국 친구들이 주도해 태국식 바비큐 양념에 고기를 재워놓는다. 개인적으로 간장 베이스의 양념이 참 맛있었고 특히 고기에 찍어먹는 소스를 만들어주는데 새콤매콤한 소스가 완전 킥이다. 그리고 태국 친구들도 마라를 좋아해 아시안마트에서 마라소스를 사서 홍탕 백탕으로 훠궈까지 먹으니 매번 바비큐 파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바비큐를 맛있게 먹고 있으면 태국 친구들은 오리지널이 훨씬 맛있으니 태국에 놀러 오면 꼭 태국식 바비큐('무가타'라고 한다.)를 먹어보라고 추천해주곤 했다.
시드니에서 3달 동안 혼자 살다가 갑자기 열댓 명이 부대끼며 살다 보니 라이프 스타일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하루 종일 심심하거나 조용할 틈이 없고 또 그 와중에도 군중 속의 고독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도 있다.
나는 저녁 시간에 모두 거실에 나와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다. 같이 요가매트를 깔고 운동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각자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넷플릭스를 보는 친구들도 있고, 한켠에서 같이 수다를 떠는 친구들도 있다. 그 시간들이 평화롭고 좋았다.
대기업을 다니다 퇴사하고 온 말레이시아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여길 왔어? 예상대로 주말이고 휴일이고 할 거 없이 일에 치여 살고 매일 야근하고 퇴근 이후에도 업무연락이 오는 삶에 지쳐서 결국 퇴사 후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다들 비슷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 다 20대 초반이고 나만 나이가 많으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의외로 20대 초반보다 내 또래 친구들이 많았다. 다들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회사를 다니며 남들 다 이렇게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지? 하는 마음이 나를 제일 괴롭혔다. 내가 별것도 아닌 걸로 힘들어하는 나약한 내 모습을 보는 게 너무 괴롭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루는 차를 타고 퇴근을 하는데 서울 강변북로가 완전히 꽉 막힌 것을 보고 그동안 쌓였던 게 폭발해 눈물이 나왔다. 인천까지 2시간은 걸린다는 네비의 안내가 원망스러웠다. 당시 출퇴근 시간마다 인천-성수-일산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극악의 루틴에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다. 하다 하다 차가 막히는 걸로 우는구나 어이가 없어서 울다가 웃었다. 이것만이 다가 아님을, 나를 힘들게 하는 많은 요소가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자기 연민에 빠지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날 왜 이렇게 늦냐는 부모님 카톡에 답장도 못하고 주차장에서 한참을 울다 눈물을 벅벅 닦고 들어갔다. 뭘 위해 이렇게 일해야 할까.
내가 패배자가 될까 봐 나를 채찍질했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이 호주 시골에서 외국인들과 부대끼며 살고 있는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고개를 들이밀 때면 현재의 충만한 행복이 불안을 잠재운다.
나는 이곳에 오게 되어 행복하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과 친구들이 생겼다. 그것은 나의 평범한 인생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워홀에 오기 전과 나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여자가 워홀을 간다면 듣는 이상한 편견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워홀을 가면 어떤 삶을 사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도 나는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삶을 가꾸고 있다. 평화롭고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