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생활 2개월 차
나는 직업이 없다. 스물여덟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나에게 남은 건 0에 가까웠다.
휴식기 없이 이직 한지 한 달도 안 돼서 나는 진정한 백수가 되었다.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사실이었다. 더 나아지기는커녕 직장을 옮길 때마다 다운그레이드라니.
2023년 6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이 나이 먹고 집에서 뒹굴거리며 부모님 눈치가 안 보인다면 그건 인간도 아니겠지. 이직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못해먹겠다며 상사에게 지르고 나왔으니. 어느 부모님이 그걸 좋게 보겠는가. 자괴감이 들었지만 오히려 더 당당한 척했다. "좋ㅈ소좋ㅈ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니까."로 시작해서 잘난 거 하나 없는 내가 뭐 대단한 마냥 떠들어댔다. 부모님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런 나를 보며 얼마나 속이 뒤집어지실 노릇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이기적이었다. 나는 너무 힘들었던 지난날을 지금의 휴식으로 보장받아 마땅하다는 뉘앙스로 전 직장을 욕하기 바빴다. 부모님께서 백수가 된 나에게 눈치를 주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떠들어 대는 일종의 방어기제였달까.
퇴사 3일 차.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부러진다더니 걷다가 돌에 잘 못 걸려서 뼈가 골절 됐다. 뼈가 조금만 잘못 돼도 이렇게 아플 수가 있구나 하는 끔찍한 고통이었다.
"깁스를 한 달이나 해요?"
"한 달이면 짧은 거예요. 다른 분은 젊으신데도 지금 2달 동안 깁스하고 계세요. 그러니까 최대한 움직이시지 말고 치료 잘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그냥 걸었을 뿐인데 다치게 해 주셔서 한 달을 꼼짝 말라는 의사의 말이 반가웠다.
집에서 눈치 안 보고 한 달을 쉴 수 있다니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이걸 운이 좋다고 말하는 나는 제정신이었을까? 뒤로 넘어져서 코가 부러졌다 하더라도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어? 난 평생 철들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본인도 스스로 이건 아니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난 알고 있었다. 나이 스물여덟에 백수로 지내면 안 된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왔으면 안 된다는 것을.
3개월만 쉬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깁스를 하고 있는 한 달 동안만은 마음 편하게 누워있다 앉아 있기를 반복했다.
2023년 7월
그 녀석이 찾아왔다. 죄책감.
가만히 앉아서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제대로 된 경력도 스펙도 심지어 모아둔 돈도 하나 없는 인생. 이건 정말 대재앙이다. 할 수 있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현실을 외면한 채 죄책감과 싸우며 '새롭게 살 수 없을까?' 하는 헛된 생각만 할 뿐이었다.
새롭게 사는 게 뭔데? 남들과 다르게 사는 거? 너 돈 많아? 특별한 재주가 있어?
'아니, 나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그럼 현실에 살아.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은 없어. 먹고살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거야.'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난 조금 특별하고 싶어.'
'그럼 노력이라도 해. 노력도 안 하면서 잘 사는 상상하는 거, 그거 죄야.'
아무런 노력도 없이 나는 특별하게 살고 싶다는 상상을 하며 죄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