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함과 싸우는 것일까 무가치함과 싸우는 것일까.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을 앞두고 가진 식사 자리.
오늘, 아빠와 조카까지 모두 모인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어버이도 있었고, 어린이도 있었다.
원래 식사 자리에서 밥값도 내가 내려고 했고, 조카의 축구공도 내가 사주려 했다.
그런데 놓쳤고 지켜봤고 방관했다.
그냥 그랬다. 예전 같았으면 자존심 상해했을 거고, 기분 나빠했을 거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했을 거고, 나 자신이 비참하고 짜치다 생각했을 거고.
근데 그냥 받아들였다. 타이밍을 놓쳤고, 맛있게 얻어먹었다고, 언니의 선물만 좋아하는 조카의 모습을 보면서 질투나 했을 거다.
2만 원 때문에 나의 관심과 사랑은 지나쳐 갔구나, 하고... 내가 낼 수도 있었는데 놓쳤다고. 근데 그냥 받아들였다. 잘 얻어먹었다, 다음엔 내가 사줄게, 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미움받을 용기,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응 얻어먹을 수도 있지. 짜칠 수도 있지. 찌질할 수도 있지. 이기적일 수도 있지. 내 운동화는 사고 싶었다. 무리해서라도. 내 것을 사고 싶었고, 내 것을 살고 싶었다. 응 난 그런 사람이야,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내 인생의 장면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모두가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정곡이 찔려 너무 아픈데 황동만의 감정 워치에는 [허기]로 뜬다.
20년 동안 데뷔도 못한 영화감독을 꿈꾸는 그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황동만에게 형은 묻는다.
원하는 게 뭐야? 성공이야? 데뷔야?
불안하지 않은 마음.
황동만은 말한다. 그저 불안하지 않는 것이 원하는 것이라고.
밝게 빛나고 짱짱했던 인물들도 삶에 찌들어간다. 그의 빛남을 나중에는 시기하기도, 질투하기도 한다.
그게 그렇게 사람을 무디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명랑하고 싶다.
명랑하게 무지막지하게 순수하게 사랑하고 싶다.
차원이 다르다는 건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달랐을까, 나라고? 나였어도?
누군가 내 이름을 크게 불러주길... 알아주길... 바라봐주길... 사랑해 주길...
나약함, 찌질함. 나의 무가치함과 싸워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