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다. 쓰이다. 존재하다.
유리컵엔 이미 마른 지도,
한 방울이 늦게 길을 찾는다.
먼지가 눈꽃송이처럼 반짝이고,
빈자리는 사람보다 오래 호흡한다.
누군가의 체온을 느껴 본 지 못한 채,
제 쓰임의 소명을 다한 듯
그렇게 그 자리에 놓여져 있다.
아무에게도 닿지 못했던 말들이 입술 밖으로 증발하고
흩어진 결정들이 눈꺼풀 위에 내려앉는다.
그렇게 찰나의 점들을 모아보면,
사라졌던 길이 다시 그려진다.
그리고,
아직 이곳에 머무는 이유가 고요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