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용도

머물다. 쓰이다. 존재하다.

by 박나킨

유리컵엔 이미 마른 지도,

한 방울이 늦게 길을 찾는다.


먼지가 눈꽃송이처럼 반짝이고,

빈자리는 사람보다 오래 호흡한다.


누군가의 체온을 느껴 본 지 못한 채,

제 쓰임의 소명을 다한 듯

그렇게 그 자리에 놓여져 있다.


아무에게도 닿지 못했던 말들이 입술 밖으로 증발하고

흩어진 결정들이 눈꺼풀 위에 내려앉는다.


그렇게 찰나의 점들을 모아보면,

사라졌던 길이 다시 그려진다.


그리고,

아직 이곳에 머무는 이유가 고요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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