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만난 쉼 표의 관찰학

가르치는 입을 닫자 열린, 은퇴 교사의 고요한 시선

by 미쉘오드리

마침표를 찍고 떠난 1년, 나는 다시 32일간의 여정을 수행하기 위해 교문 앞에 섰다.

책임감도 의무감도 없이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1년을 보낸 뒤 다시 직장인이 되어 은퇴 전과 다시 돌아온 직장인의 일상을 비교하고 관찰자 시선으로 이야기해 보고 싶다.


예전의 내가 알던 그 교정은 아니다. 낯선 건물, 처음 보는 얼굴들, 그리고 달라진 공기. 하지만 묘하게도 그 낯섦이 나를 더 자유롭게 한다. 책임감을 벗어버리고 같은 일을 하지만 나에게 오는 부담감은 훨씬 줄었다. 내가 가진 마음가짐도, 일을 대하는 태도도, 훨씬 여유롭고 스트레스가 적다.


타임라인이 있어서일까?


한 번도 비정규직인 적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 등 프리랜스직을 유지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예전엔 나는 슈퍼우먼이 되고 싶었고 난들 승진에 욕심이 없었을까?

하지만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가 남들과 다름을 알게 되고 순리를 받아들이면서 나는 내가 하는 일에서만큼은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은 기피하는 특목고에 가서 수업만큼은 타협하지 않았다. 연구비를 위해 응모도 하고 연구 수업 발표회도 자발적으로 하면서 교사로서 자존감을 학생들과 소통하고 수업하는 걸로 자존심을 지켜냈다. 그 덕분인지 내가 퇴임한 자리엔 2년째 응시한 교사가 없어 계속 미발인 채로 기간제 교사가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너무 빡세게 했나?


그래도 마지막 학교에서 보낸 4년이 교사 인생에서 황금기였다. 학생들과 수업시간에 열띤 토론을 하고 수업 후에도 학생들 질문에 답하느라 쉬는 시간 10분을 다 할애 했지만 복도에서의 뿌듯함과 보람은 그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엔돌핀을 돌게 했다.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며 들 듯 학생들은 그렇게 나에게 길들여졌나 보다.


그런 시간을 뒤로 하고 퇴임을 한 뒤 다시 우연히 돌아온 학교에서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랐다.


학생들의 모습도 학교의 질서도 수업 시간에 가르치는 내용은 변한 게 없지만 난 관찰자의 시선으로 학교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 지나온 학교의 모습이 이런 거였구나',

마치 내 자식을 기를 땐 느껴보지 못한 애정을 손녀에게는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 듯 무한한 애정 어린 시선과 용서를 하게 된다.


물론 지금도 수업 시간에 흐튼 짓을 하는 학생은 용서가 안되지만 예전의 날카롭고 뾰족한 송곳이 조금은 뭉툭해졌다.


참 마음이란 게 이렇게 다르구나,

무엇이 나를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욕심이 없어서일까? 책임감이 좀 덜해서일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지금의 나는 그 여백 속에서 손녀를 보듯 아이들을 보는 관찰자가 된다. 하지만 문득 두려워진다. 엘리 위젤의 말처럼, 이 평온함이 혹시 아이들을 향한 내 열정의 '무관심'은 아닐까?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겨 아이들의 심장에 정확히 배움의 화살을 꽂아 넣던 그 시절의 스트레스는, 사실 나를 살아있게 했던 가장 뜨거운 '사랑의 긴장감'이었을지도 모른다. 뭉툭해진 송곳이 편안함을 주지만, 가끔은 그 날카로웠던 끝단에 맺혀있던 나의 진심이 그립기도 하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학교는 평화롭다. 하지만 그 평화가 가끔은 낯설고 두렵다.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서 어디로 향해 갈지 나도 나의 시선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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