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설국(雪國). 녹아내린 자리마다 스며든 것들

짧았던 겨울의 환영을 무대 뒤로 배웅하며

by 하카나이

어느덧 2월의 달력이 얇아지고, 제법 차가웠던

바람 속에서도 미세한 온기가 만져지는 밤입니다.

일산의 좁은 골목, 불 꺼진 하카나이(儚い)에서

조용히 안부를 전합니다.



지난 한 달, 이곳의 작고 어두운 방에서는

'겨울의 틈, 설국(雪國)'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밤

하얀 눈보라가 피어올랐다 스러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당신에게 내어드렸던 뜨거운 커피. 그리고

그 위로 조심스레 얹어둔 차가운 크림은,

당신의 테이블에 닿는 그 찰나의 순간부터

이미 허물어질 운명을 안고 있었지요.

섞지 말고 그 흑과 백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아 달라 부탁드렸던 것은,

사실 그 짧은 소멸의 과정이 제가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던 진짜 위로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끝이 있기에 찬란합니다.

크림이 커피의 열기에 녹아들어

완전히 그 하얀 형체를 감추었을 때,

비로소 잔의 밑바닥에는

가장 묵직하고 부드러운 달콤함이 남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이별과 상실도

어쩌면 이와 같지 않을까요.

맹렬하게 아팠던 기억도,

견뎌내기 버거웠던 지독한 우울도,

시간이 흘러 내 안의 뜨거운 온도와 만나게 되면 결국

나를 지탱하는 가장 깊은 맛의 흉터로 남게 된다는 것을.



저는 텅 빈 매장에서 홀로

이 한 잔의 커피를 내리며 매일 밤 깨달았습니다.

이제, 짧았던 겨울의 환영을 거두고

'설국'을 무대 뒤로 정중히 배웅하려 합니다.



사요나라(サヨナラ).



일본어로 안녕을 뜻하는 이 말의 어원 속에는,

단절의 비통함보다는 '그렇다면 이제 나아가야지' 하고

현실을 수용하는 체념 섞인 다정한 결의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별은 결코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음 계절로

넘어가기 위한 아름다운 통과 의례일 테니까요.



2월의 마지막 밤까지.

이 차갑고도 따뜻했던 겨울의 마지막 잔을

오직 당신을 위해 묵묵히 준비하겠습니다.


부디, 지난겨울 당신의 굽은 어깨를 짓눌렀던

무거운 감정들도 이 마지막 설국과 함께

하얗게 녹아내렸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돌아가시는 길,

당신의 손에 쥐여드릴 작은 '사요나라 티켓'이

다가올 새로운 봄을 향한 조용한 부적이 되기를.



• 당신의 평온을 비는 곳, 하카나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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