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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늘 Feb 07. 2024

일과 글쓰기, 나에겐 생존이 걸린 일

은유작가는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쓰기는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하나는 기분이 삼삼해지는 일이고 하나는 몸이 축나는 일이다”라고. 그러나 삶의 급물살을 타고 살다 보면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버거운데, 무슨 사유와 사색이란 말인가!     


지난 한 달 돈벌이 없이 지내니 시간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내면에서 요동치는 감정들을 몇 편의 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잠시 한가했던 1월이 지나고, 파트타임이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운수 좋게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는데, 졸업증명서 내라, 개인정보동의서 내라, 내라는 서류가 많다. 3일 안에 이러닝 교육을 완수하지 않으면 채용이 취소된다는 협박이 난무한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빼앗길까 봐 긴장되고 조마조마하다. 나는 갑이 시키는 것을 빠지지 않고 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준비했다.      

함께 지원서를 넣었는데 서류에서 불합격한 지인이 축하 문자를 전해왔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죄인이 된 것 같다. 같이 잘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안도의 한숨과 함께 심장에 철근을 매달아 놓은 듯 무겁고 처진다.     


몇 개 안 되는 서류와 확인할 사항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체크하다 보니 일주일이 금세 지나가 버렸다. 취업을 해서 제 몫을 하는 것 같아 면목이 생겼지만 덕분에 멈추어 사유하고 정리하는 시간은 뒷방으로 밀려났다. 나를 찾고, 깊어지고 싶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파트타임을 선택했는데, 새로운 직장에서 오는 긴장감으로 마음의 공간이 사라졌다. 분주함으로 글쓰기가 뒷전이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성냥에 불을 붙여 나뭇잎이며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간신히 붙여놓은 글쓰기 불꽃이 스르르 꺼져버렸다. 열심히 부채질을 하면 불씨가 살아나려나?

다시금 불씨를 살려 타닥타닥 뜨겁게 타오르는 모닥불이 되고 싶다. 불 옆에 둘러앉아 온기를 느끼며 이야기 나누는 아궁이 불처럼. 보글보글 국물을 끓여 몸보신하고 나눠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이 우선한다”라고 한다. 내가 정말 글쓰기를 좋아하는지, 글쓰기 하는 내 모습 상상하기를 좋아하는지 묻게 된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글공부 안 하는 양반들이 도포를 휘날리며 뒷짐 지고 폼나게 걷는 허세 같은 것이었다. 나의 삶을 엮는 자서전을 썼다는 상상만으로 뇌에서 도파민이 쫙쫙 뿜어져 나와 짜릿한 쾌감을 즐겼던 것이다. 머리 쥐어뜯는 고통은 마다하고.


나에게 글쓰기는 더 이상 폼나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처럼 좋아서 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나에게는 생존에 관한 일이다. 나답게 살고 싶은 존재에 관한 것. 나의 지나온 삶, 지금 현재,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모습을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라 속이 꽉 차서 영글고 싶은 바람으로.


글쓰기를 하려면 그것을 위한 시간을 미리 떼어놓아야 한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운동을 하듯이 그 시간을 비워둬야 한다. 때론 신나고 스펙터클한 재미도 사양하면서. 고혈압 환자가 맛없는 현미식과 저염식을 하듯이 영혼의 건강을 위해 꾸준히 해야 한다. 다시 불꽃을 살려보자. 불이 붙을 때까지 팔이 떨어져라 불씨에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때론 매운 연기에 눈물 콧물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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