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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늘 Jan 24. 2024

10년 전 부하직원이 면접관으로 앉아 있었다!

괜찮은 파트타임 자리가 나서 지원을 했는데 면접을 보게 되었다. 페이도 괜찮고 좋은 일자리 같아서 꼭 붙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간절함 때문인지 평상시보다 긴장되고, 며칠 전부터 계속 신경 쓰였다. 예상 질문을 만들어 답을 적어서 읽어보고, 시간을 재면서 조리 있게 말하는 연습을 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꼭 합격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30분 전에 도착해서 준비했던 면접 질문을 읽어보고, 5분 전에 화장실에 가서 옷매무새를 다시 살펴보았다. 드디어 우리 조를 호명했다. 면접은 4명이 한 그룹이 실시한다. 안내를 따라 면접장 앞으로 갔다.


“오하늘님~ 맨 앞으로 오시고요, 들어가서 가장 안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후우~” 숨을 가다듬고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세 명의 면접관이 앉아 있었다. 가운데에 체격이 듬직한 남자분, 양쪽에 여자 두 분이 있었다. 우리를 안내했던 분도 문 입구 쪽에서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기소개와 지원동기를 얘기해 주세요~”


첫 번째 질문에 답변을 무사히 마치고 다른 지원자 세 명이 대답하는 동안 면접관을 살펴보았다. 세 명의 면접관은 다들 나보다 젊어 보였다.  내 앞쪽에 앉은 면접관이 낯익은 얼굴이다.

'어디서 보았더라...?'


다른 분들이 대답하는 동안 그 면접관을 힐끔힐끔 보며 이 면접관을 언제 만났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한참을 보고 또 보다가 드디어 떠올랐다! 10여 년 전 내가 팀장이었을 때 함께 일했던 팀원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 친구인가? 어떻게 그 친구가 저기 앉아있지? 정말 맞아??

   

드디어 그 면접관이 질문했다.

가족 죽음의 고통을 겪은 내담자가 왔을 때 어떻게 상담하실지, 두 가지 포인트를 얘기해 주세요.”

어려운 질문도 하는군!’ 하는 생각과 동시에 ! 맞아! 그 목소리야!’ 확실해졌다.     

질문이 어렵네요~” 너스레를 떨며 답변했다. 그리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지만, 쪽팔릴 정도는 아니었다.

      

이 면접관은 팀원이었던 당시 무척 똘똘하고 야무졌던 친구였다. 달갑지 않은 팀장의 지시에 웃으면서 알았어요~ 제가 한 번 고쳐볼게요~”라고 말하며 다음날 결과물을 가져왔었다. 계속 일하고 싶은 친구였는데 1~2년 일하고 곧 그만두었던 기억이다.

다시 면접관을 힐끔 보았다. 면접관은 굳이 나와 눈 맞춤을 하지 않았다. ‘나를 모를 리 없을 텐데...’ 눈짓으로라도 아는 척하지 않는 것이 내심 섭섭했다.  


누군지 확실해지니 더 이상 힐끔거리지 않게 되었다. 다른 지원자들의 답변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천장을 보며 내 답변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사히 면접은 끝났다.      


어깨와 팔이 뻐근했다. 긴장했었나 보다. 서둘러 옷과 가방을 챙겨 나왔다. '혹시라도 마주치면 뭐라 얘기해야 하지?' 발걸음이 빨라졌다. 훔친 것을 들켜 뒷덜미를 붙잡힐 거 같아 도망치듯 나왔다.


! 중요한 면접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과거에 팀장으로 일했던 모습, 팀원들에게 빡빡하게 업무지시를 했던 일, 잘했다고 칭찬했던 일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10년도 훌쩍 더 지나 파트타임 면접을 보러 앉아 있는 나.


기분이 묘했다. 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한 때 잘 나가던 내 인생이 추락해 버렸나?

지난 10, 나는 어떻게 살아왔길래 지금의 모습으로 있는 것일까?

자기비판의 목소리가 매섭게 찌르고 있었다.




불현듯 한 달 전 좋은 직장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던 일이 떠올랐다.


지금 이 모습은 나의 선택 아닌가?

초라하게 살기로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초라해 보여도 이 길을 걸어가기로 결정했지 않는가?

사회경제적으로 빈약해 보이지만, 더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포기지 않았나!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열심히 달려왔다. 결과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은 나를 위한 충전과 채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상을 향한 달음질을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자유로운 선택과 아이와 시간 보내기를 하고 있다.


오늘 만남은 생각할수록 기막히고 어이없고 화딱지까지 났지만, 이 또한 내 생긴 모양이니 받아들이려 한다. 나의 시간, 나의 때를 살련다. 나의 꽃을 피울 때를 기다리며!


오늘따라 찬바람이 매섭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라고 하더니, 볼이 에이는 것 같다.


#선택 #면접 #황당한 #당황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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