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고갈된 정신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

by 이연

지독한 피로가 오늘도 신경을 짓누른다. 정신적 고갈이 육체로 새어 나오고 있다는 증거다. 아까부터 내 눈앞을 거추장스럽게 날아다니는 저 벌레도 내게 반쯤 죽음의 냄새가 난다는 걸 알아본 모양이다. 손을 들어 쫓아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아서 나는 결국 앉아있던 자리를 바꿔야 했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이런 사소한 사건에서조차 나는 내게 드리운 불길함을 느끼곤 한다. 순전한 피해망상 같기도 하고 예언 같기도 한 하나의 전조.


우울에 허덕이던 시절엔 피로보다는 심한 졸음에 시달렸다. 신경에 가해지는 과도한 압박을 견디지 못한 내 정신은 스위치를 잠시 내려버리는 쉬운 방법을 택했고, 나 역시 기꺼이 그것을 따랐다. 짙게 내려앉은 어둠 위로 매일같이 고통을 쏟아부어 만든 모래성은 너무도 쉽게 쌓이고 무너지길 반복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욱 실패하고 지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쏟아낼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언가를 담고 싶다면 적어도 그릇의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미 한 번 완전히 분해되어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린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이 그릇은 겉으로 보기엔 비슷해 누군가 들어 옮겨 보려고도 하지만 곧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오래지 않아 가루가 되어 흘러내리고 말 테니까.


그런데 이 작아질 대로 작아진 미세한 입자 속으로도 빈틈없이 스며들어 오는 감정이 하나 있다. 주기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지독한 고통. 현실을 짓밟으며 불쑥 고개를 들이미는 이 오래된 나의 친구이자 원수. 주위의 모든 것이 생경해지고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순간 고통은 나를 전속력으로 들이받는다. 나는 피할 도리조차 없이 그 충격에 압도당하고 무력해진다. 필연성을 되새기는 것만이 간신히 나를 돕는다. 책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 때부터 나의 현재 역시 시간을 거쳐 온 역사의 일부이자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삶의 엄정한 진실.


하지만 꿈속에서조차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인생은 아무런 유익도 만족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 앞을 보면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뒤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손해, 소름이 끼칠 만큼 끔찍한 손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왜 인간은 이런 상실과 손해 없이는 살지 못하는 걸까?

―안톤 체호프, 《로실드의 바이올린》
삶은 지나가는 그림자야. 죽음도 지나가는 그림자고. 고통만 지나가지 않아. 계속되고 계속되지. 언제까지나.

―아모스 오즈, 《유다》


정말로 사실이지 않은가? 최소한 나에겐 그렇게 들린다. 설령 당장 우리 눈에는 온갖 아름다움으로 장식된, 아주 찬란하고 화려한 것들이 아른거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아래에 숨은 그늘을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내 기진맥진함은 아마도 이 "손해"를 견디는 데서 기인한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마침내 고통은 혼자서 자라난다. 마치 내 생명력이 자신의 양분인 것처럼 태연하고 뻔뻔스럽게. 나는 하루하루 죽음처럼 창백하고 조용해졌다. 지독한 고통은 거의 고요에 지배당해 굴복하는 것과 비슷하다. 깊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으며 어느 날은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삶의 한가운데 벌어진 상처"에 지나지 않는 내 의식. 어쩌면 모두가 겪었지만 공공연히 내세우지 않을 뿐인 재앙 같은 깨달음. 서로 다른 정신을 지나 내 안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이 새롭지 않은 현상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어디로 나를 이끄는 것인지.


관조의 정적 속에서 영원의 무게가 당신을 누르고 있을 때 째깍거리는 벽시계 소리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면, 당신은 미래를 향해 가는 시간이 얼마나 기이한지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삶에 대한 깊은 염증, 같은 희극을 되풀이할 수 없다는 의식이 이 시간성을 발견하게 한다. (…) 없음이 커져 가고, 텅 빈 공간이 팽창하며, 저 세상이 위협한다. 이는 그 시간들이 환기시켜 주는 것들이다. 관조의 정적 속에서 우주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끈질기고 비통한 음향이 울려 퍼진다. 존재와 시간을 분리해 보았던 사람만이 그 비극을 경험한다. 존재를 피해 도망치다가 시간에 짓눌리는 것이다. 그는 시간이 전진하고 있음을, 죽음이 전진하고 있음을 느낀다.

―에밀 시오랑, 《절망의 정점에서》


터질 것 같던 심장이 때가 아님을 깨닫고 잠잠해지면 어느새 밤이 된다. 아직 펜을 던져버리지 못한 나는 오늘도 저 감각 아래, 전진하는 시간과 죽음 사이에 누워 있다. 서서히 바스러지고 있는 정신이 내일은 조금 더 영(零)에 도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가끔은 오래 전 상상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창백한 달빛 아래 잠들었다 깨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나를 맞아주길 바라던 것을 떠올리곤 한다. 이제는 그런 터무니없는 기도를 하진 않는다. 무엇보다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느낀다. 친근하게 나를 맞아주는 밤과 어둠. 깨어나기 전까지 나는 잠시나마 자신을 잊고 평화를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