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다가옴과 다가섬

by 김도우

지금 만들어 낸 단편영화 "봄 비"의 가제는 come이었다.

지금 내게 와달라고 말할 때, 혹은 지금 내게 와도 된다고 말할 때, 가장 강렬하게 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말을 뱉으면서 인물이 어떠한 존재에게 다가서는 것과 그 존재가 인물에게 다가오는 것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


그 존재는 엄마였고 즉, 메타포였다.

영화를 찍으면서 오우리 배우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를 찾는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서 감정선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사실 나는 어떻게 설명해줘야할지 몰랐지만, 엄마라는 존재가 꼭 선명하지 않아보이길 원한다고 했다. 내게 엄마는 모성애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도달해야할 나 자신이고, 신의 형상을 띠고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묵묵히 말하는 인물, 태희

영화에서 태희는 그저 묵묵히 말한다. 아주 띄엄띄엄, 그러나 세세하게 읊조리며 자신의 마음을 들려준다. 그러나 끝까지 그녀의 진심이 어떠한 깊이인지 도달할 수 없게한다. 그녀는 울지 않는다. 숱한 그리움은 눈물이 아니라 고독을 낫는다.


나의 개인적인 태희는 실제로 언니의 이름이다. 언니의 이름을 가져다가 쓰고 사실은 내가 위로받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실은 엄마의 존재로 나는 결핍을 느끼고, 언니는 엄마의 부재로 결핍을 느낀다는 사실에서 적절한 타협을 보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내가 위로받고 싶어서 치유받고 싶어서 만들었다.


우리 모두는 태희와 같은 시절을 지나거나 지날 것이고 지나지 않았을까 했다. 태희에겐 좋은 어른이 부재했고,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 혹은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사람은 그동안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태희는 엄마의 자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존재임이 틀림없다. 영화는 존재에 대한 깊은 숙고 뒤에 그 존재에 연민을 불어넣으며 시작한다는 저의 철학이 시작되었던 중요한 사람이다. 태희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안쓰럽게 여겼던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줄곧 미안해 했다. 마치 엄마를 빼앗은 나쁜 아이가 된 것 같았고, 내가 소유한 엄마와의 이십삼년의 세월은 ‘엄마’를 부를 수 있는 그리고 엄마의 생일을 마음 껏 축하해줄 내가 축하받을 당연한 시간들을 짓누르며 내 가슴을 무겁게 했으니까.


만일 엄마가 나를 낳지않고 태희와 함께 교류했다면 태희의 결핍은 조금 누그려졌을 것이 틀림없다. 오히려 나보다도 태희는 우리 엄마가 더욱 필요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결핍이 엄마와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건 그녀에게 엄마의 부재가 더 나은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운명이라는 것을 곱씹으며 영화라는 예술안에서 우리가 멋진 파트너로 만나지 않을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사실 태희가 만든 영화를 본적이 있다. 태희는 영화를 좋아했고, 여전히 이쪽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내 영화로 당신에게 손 내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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