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이렇게 써보세요.
보통 시나리오라는 것이 많은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박찬욱이 화장실에서 올드보이를 연상해 냈던 것처럼 우리도 아무런 생각 없이 떠오르는 순간을 잡아내면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라.
모든 이야기는 노스탤지어라는 것에 있다. 그리움이라는 말인데,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아픔이라는 뜻이다. 사람에게는 모두 노스탤지어가 있는데 그것을 떠올릴 때 우리는 슬픔보다 큰 상실을 느끼곤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과거가 희석되고 또는미화되기도 하기 때문에 지금의 나로서 그것을 해석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보통 우리는 가장 아픈 시간을 미화하고
행복했던 시간을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
시나리오는 미화와 왜곡의 과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장 짙은 노스탤지어를 꺼내서 쓴다면 무조건 수월해진다. 그리 어렵지 않다. 걷거나 뛰다가, 아무 생각 없이
유영하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생기는데 그 순간을 잡아내고 이미지를 만들어라. 그렇게 영화의 한 장면을 구축하는 것이다. 보통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고 연상을 하다가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연상이 아니라, 스치듯 떠오르는 기억들을 이미지화 시키고 그것들을 맥락에 맞게 이어붙이는 것이 영화적 연상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남이 보고 싶을까?
영화를 만드는 것에 재미를 붙이려면 나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충동이 생겨야 한다. 그런데, 모순적인 것은 이 이야기가 누군가의 궁금증을 유발해야 한다. 이야기라는 것은 들어주는 대상 없이는 존재하기 힘들고 영화는 관객을 겨냥하지 않고는 고립되기에 쉽다.
이야기라는 것은 주관적인 거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이 보고 싶게 하는 것이지, 사실 보게 할 필요는 없다. 자연스레 그 이야기가 담아낼 진폭이 크다면 보게 되어있다. 사실 감정이라는 것은 구분되어 있지 않다.
만약에 연인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자. 사랑이라는 감정은 모두가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구현하고 표현해 내는 것에서 영화의 평점이 갈리는 거다. 사실 얼마나 진실되냐에 따라서 사람에게 다가오는감동이 다르다. 각자가 경험하는 사랑은 너무도 다르지만 감정은 동일하게 느낀다. 뜨겁게 타오르다가 식고 그리고 아프다가 이별하고 다시 사랑한다. 그치만그 과정을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으로 겪었는지에 대한시나리오는 우리의 왜곡과 미화의 몫이다.
느슨하게 쥐어라
영화에서 중요한 건 결말이다. 결말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이야기를 개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그리고 개연성을 부과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 모든 걸 총합해서 결말을 짓는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좋은 영화는, 결말에 힘을 주지 않는다. 되려 담담하다. 모든 곳에서 힘을 주다가 결말에서 느슨해지는 것은 도전이다. 그렇지만 실은 모든 부분을 느슨하게 쥐어야 한다. 한마디로 힘을 빼야 한다. 내가 책상에 앉아서 고심한 이야기가 혹은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다가 떠오른 첫 기억의 강렬한 에너지가 유지되기는 어렵다.
그런 영감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사유하고 창작하려 했던 자에게 주어지는 기회다.
그러니 나에게 주어진 영감을 믿고 힘을 빼라.
시나리오 이렇게 써보세요.
먼저,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고향을 떠올리세요.
그리고 미화하고 왜곡하세요.
마지막으로 이 모든 시간을 믿고 느슨하게 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