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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불호수 Jan 31. 2023

새벽 단상(斷想)

지인의 아버님께서 소천하셨다.


오늘 새벽, 발인 예배에 참석하였다.

예배 후 운구를 위해 같이 참석한 지인들과 흰 장갑을 끼고 섰다.

목사님과 영정 사진을 든 손주, 상주가 앞에 서고,

운구를 위해 흰 장갑 낀 우리가 그 뒤에, 그리고 가족과 친지들이 마지막에 섰다.

식장에서 막 참관실로 출발하려는데 장례식장 보안팀 한 분이 출발을 지연시킨다.


식장에 남은 옷가지와 짐들을 모두 챙겨가야 한단다.

여기는 곧 청소하고 다른 팀을 받아야 한단다.


운구를 위해 겉옷과 짐들을 놓고 가려했던 우리는 당황스러웠다.

결국 다른 지인이 우리 옷가지와 짐 모두를 들어주었다.


참관실로 출발하며,

문득,

지인이 들어주고 있는 나의 모직 외투와,

내 왼쪽 바지 주머니의 스마트폰,

오른쪽 주머니의 자동차키,

각종 카드가 잔뜩 들어있는 품 속의 장지갑...

모두,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정작 떠나시는 분은 사진 한 장으로 앞서가시는데,

남아있는 우리들은,

살아가는 우리들은 짐이 너무 많다.

이 새벽에도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정작 우리도 언젠가 빈 손으로 떠날 텐데,

살아갈수록 점점 더 많은 것들에 얽매여간다...


누구 말마따나 내가 그것들을 소유하는 것인지,

그것들이 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산골짜기 작은 움막에서,

법정스님은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셨을까?


귀가하는 차 안에서,

나는

무소유 판권마저 소멸시키고 무소유로 떠나간 그분이 문득 떠올랐다.


가볍게 살고 싶다.

진심으로 가볍게 살고 싶다.


어느 겨울 새벽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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