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壽衣)를 입히는 남자

열두 번째 글: 고독사

by tank

고독사

1인 가구의 증가와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고독사에 관련한 뉴스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디 어느 곳에서 사망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유해가 발견되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 거나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거나 역한 냄새가 나서 신고를 했더니 사망 시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된 시신이 발견되었다.” 하는 내용으로 대부분은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되어 살아왔거나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에 방치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는 반짝 사회적 취약계층이나 홀로 사는 노인들에 관심과 지원을 늘리겠다는 이야기들을 반복하며 일부 행정적인 조치를 더 하는 움직임들을 보이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독사는 여전히 늘어가고 있고 점차 우리 사회의 한 단면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23년 한 해 대한민국에서 사망한 이들의 수가 대략 37만 명 정도라고 한다.

계절에 따른 차이가 있겠으나 평균적으로 보면 한 달에 약 3만여 명 내외가 유명을 달리하는 셈이다. 그중 고독사로 돌아가시는 분들의 비율이 1%를 조금 넘는다고 하니 월평균 300명 정도가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문제는 이렇게 혼자 외롭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그 계층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는 고독사라는 것이 노숙자들이나 거동이 불편하고 도와줄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근래에 이르러서는 비단 노인들뿐 아니라 청년과 중, 장년층의 사망자도 적지 않게 늘어나는 형세로 사업실패 또는 취업의 한계 등으로 인해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지거나 관계의 해체나 사회부적응 등의 문제로 떠밀리듯 은둔자가 되어버린 경우들이 많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 시대가 한국전쟁 직후 또는 7, 80년대처럼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역량을 더하는 선진국 소리를 듣는 시대라는 것이다.


먹을 것은 늘 부족했고 놀잇거리도 기껏해야 산이나 들로 뛰어다니며 자연이 주는 신비에 어우러지거나 일상생활 속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놀잇감들을 찾아 뛰어노는 것이 전부였던 시대에 비해 생활환경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아졌고 먹을거리도 놀잇거리도 훨씬 더 많아져 예전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더 편하게 누리고 사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세상을 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고독사 또한 늘어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분명 물질적으로 더 풍요해졌고 먹거리도 주거 수준이나 교육 수준과 함께 성취욕에 대한 만족도도 훨씬 더 높아졌는데 그에 반비례해 아무도 모르게 쓸쓸한 죽음을 맞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소외와 무관심이다.

옆집을 떠나 아래윗집, 그리고 동네 사람들 대부분을 알고 지내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누구누구의 자식이나 누구누구의 아버지, 어머니라는 것을 훤히 꿰고 있던 예전과 달리 자기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지금은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에도 관심이 없고 그렇다 보니 인사를 나눌 기회조차 없는 것이 당연하게 되고 간혹 몇 번 안면이 있는 사이라고 해도 나와의 관계성이 없으면 마주 지나치면서도 지레 서로 부담스러울까 싶어 조심하게 되고 심지어는 친척들 사이에도 서로의 세밀한 소식들을 묻지 않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세상이다.


지금의 60대 이상 장년들에게 물어보면 “사람 살기에는 오히려 옛날이 훨씬 좋았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지금처럼 교육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어서 법보다 주먹이 가까웠던 시대.

지금보다 잘 먹고살지도 못했으면서 남에게 밥 한 끼 대접하는 걸 당연히 여겼고 이웃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팔 걷어붙이고 나서 도와주며 누구네 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훤히 꿰고 있던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과 용기가 되어주던 시대와 달리 정작 따뜻한 안부 인사 한마디나 가벼운 눈인사 한 번만으로도 삶의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조차도 손을 내밀 용기조차 없게 만드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에고이즘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보니 누군가 손 한 번만 내밀어줘도 다시 양지로 나올 수 있는 이들이 점점 고립화되고 무관심 속에서 소외당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고독사로 돌아가신 분들의 장례를 치르고 그들이 살던 집이나 방의 뒷정리를 하다 보면 진득한 외로움과 함께 그리움이 묻어난다.

이런저런 사유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목소리를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관계의 단절 속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이 세상을 떠난 이들이 남긴 유품 중에는 혹시라도 나중에 누군가 연락이 되면 전해지길 바라는 부탁이 담긴 꾸러미가 있기도 하고 직접 다 전하지 못한 미안함과 감사 그리고 사랑의 표현을 담은 메모들도 있다.


지지고 볶고 싸워도 정이 넘쳐나던 예전과 달리 바빠서 또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내 일이 아니면 외면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현대사회의 고독사 문제는 더는 남의 일이 아닌 누구에게라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관심과 주변의 보살핌이 요구되는 시대다.

따뜻한 시선으로 손 한 번 잡아주고 말 한마디 나누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독사의 위기에 처한 이들을 세상으로 이끌어 새로운 힘을 얻게 할 수도 있고 그들의 죽음이 마냥 외롭지 않게 할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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