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글: 마지막 모습
누군가 내게 한 생애를 끝내고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마지막 모습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해왔다.
답은 명료했다.
“미소 가득한 얼굴로 떠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 없겠습니다.”
죽음의 형태는 다양하다.
수명을 다하여 맞는 자연사를 비롯해 병으로 고통받다가 떠나는 병사, 그리고 전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는 사고사 등등으로 인해 다사다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설지 모르는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거부감을 보이기도 하고 부러 금기시하는 형태를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단 한 번뿐인 삶.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굴레 앞에서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까?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에 조금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지금껏 살아왔던 그 형태의 반복을 통해서라도 애써 죽음을 외면하려는 몸짓을 보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장례에 관계하면서 수많은 이들의 임종을 지켜보아 왔던 내게 있어 죽음은 익숙한 일이어서 자칫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무신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나는 매번 장례를 치를 때마다 죽음과 새로운 감정의 교류를 나누곤 한다.
누군가 임종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곧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가 사후경직이 오기 전 고인의 몸을 수습한 후 안치실에 안치하게 되는데 (이를 ‘수시’라고도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수시’와는 결이 다르다.) 이때 마주하게 되는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 모습 또는 표정은 저마다 다 다르다.
어떤 이들은 한 생애 잘 살아냈다는 뿌듯함이 담긴 평온한 미소를 띠기도 하고 어떤 이들의 얼굴에선 광채가 나기도 하여 수습을 하는 입장에서도 ‘이 분이 정말 행복하게 떠나셨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가 하면 어떤 이들의 모습 그리고 표정에서는 두려움에 쫓기듯 겁을 먹은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의 모습에서는 아직 세상을 떠나지 못할 만큼의 안타까움이 담긴 억울함과 원망이 가득한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예전에 모 방송 라디오 대담에 출연해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청취자들의 그런 반응들을 접한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정말이었네요?”
“입관할 때 지켜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모습이었어요.”
“덕분에 신비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뿐이고 예외 없이 맞게 되는 죽음 앞에서 누군가는 평온히 빛나는 모습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원망과 안타까움이 가득한 모습으로 내 앞에 놓여있을 때 장례지도사로서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평온하고 빛나는 모습은 더 평온하고 빛나는 모습으로 원망과 안타까움 그리고 고통이 묻어나는 이들에게는 고인의 이 세상에 대한 미련과 회한 그리고 절망들에 대해 귀 기울여주고 그들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이 세상과의 이별을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해 주는 일이다.
얼마간의 교감이 끝나고 가만히 그들의 귀에 “한 생애 살아오신다고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의 수고는 다 내려놓으시고 평안히 쉬십시오.”라고 위로해 주는 것 또한 장례지도사의 몫이다.
여담이지만 마지막 모습이 평온한 사람과 회한이 가득한 사람은 습을 하는 과정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평온한 모습의 고인은 수의를 입히는 과정이 말 잘 듣는 어린아이 옷을 입히는 것처럼 수월하기도 하지만 회한이 가득한 모습의 고인은 옷 입기 싫어 떼쓰는 아이에게 억지로 옷을 입히는 것처럼 진땀을 빼기도 한다.
전자에게는 “아이고~ 옷도 참 잘 입으시네~” 칭찬을 하기도 하고 후자에게는 “자~ 요렇게 입읍시다. 저렇게 해보세요.” 하고 살살 달래 가며 수의를 입히는 일이 끝나면 그들의 얼굴에 그대로 표정이 묻어난다.
“옷 잘 입혀줘서 고맙습니다.” 하는 표정과 “난 이 옷 입기 싫은데” 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표정들을 보면서 때때로 그들이 죽은 이들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으로 나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 역시도 유한한 생명이라 언젠가는 죽음 앞에 서게 될 것이고 지금 내가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모습을 정돈해 드리는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내 마지막 모습을 보여야 하는 때가 된다면 그런 모습이고 싶다.
힘든 생애였지만 그래도 잘 버티고 살아줘서 고맙다는 스스로의 위로와 함께 나와 연을 맺었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미소가 묻어나는 모습.
그런 모습으로 나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이가 조금이라도 수고를 덜어낼 수 있다면 무어 더 바랄 것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