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壽衣)를 입히는 남자

열다섯 번째 글: 노인 요양보호시설

by tank


출산율이 낮아지니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문을 닫는 학교가 많아지는 만큼 늘어나는 곳이 있다.

바로 노인 요양 보호시설이다.

심지어는 어른이 유치원이라는 급조된 신조어를 써가면서까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노인 요양 보호시설은 한편으로는 간병에 지친 가족들을 대신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돌봐드린다는 사회보장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무너뜨리고 자기 편리만 좇는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는 시대의 필요에 따른 것이기도 해서 그 장단점에 대해 자주 논쟁의 화두가 되기도 한다.


노인 요양 보호시설에 대한 얘기들을 하다 보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오래전 아직 요양 보호시설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에 주택가의 한 골목에서 겪었던 일로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는 중에 어디선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다 보니 골목 중간쯤에 있는 주택의 1층에 있는 반지하 형태의 살림집 문에서 나는 소리였다.


문은 두 짝 크기의 여닫이 형태였고 문 가운데에 있는 홈에 못을 걸어 밖에서 자물쇠로 잠겨있었는데 할머니로 추정되는 노인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는 자물쇠 바로 옆 문틀에 매직으로 쓴 큼지막한 메모가 붙어있었다.

“치매 환자가 있는 집입니다.

곧 가족들이 돌아오니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마십시오.

동정심에 문을 열어주시면 우리는 또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아다녀야 합니다.”

몇 번은 길을 지나는 누군가가 불쌍한 마음이 들어 문을 열어준 적이 있는 모양으로 치매 노인을 찾아다니느라 애를 먹은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글귀를 보고 든 생각은 ‘오죽했으면 그럴까?’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지금은 그나마 요양 보호시설이라도 있어 가족들이 한시름 덜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막연히 가족들의 책임만으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던 그 시절에는 치매라고 하면 온 가족이 매달려 고생을 하는 것이 다반사여서 그나마 경제적 여건이라도 되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위의 경우처럼 밖에서 문을 잠그고 생계를 위해 나서야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치매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어디 잠시라도 긴장을 놓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정도였었다.


비단 치매뿐 아니라 가족 중 누군가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기라도 하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가족 구성원들이 지쳐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시대적 요구에 따라 등장한 요양 보호시설은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면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픈 노인들을 간병하는 일은 전문 인력의 손길에 맡겨두고 생업에 열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혁신적인 제도이며 장치인가 말이다.


그러나 이 좋은 취지의 요양 보호시설도 그리 오래지 않아 새로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마는데 그중 일부가 시설입소자에 대한 방임과 학대이다.


노령인구의 급증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노인은 많아지는데 요양보호사의 수급은 한정적이고 그조차도 수지타산을 맞춰야 한다는 경영상의 명목이 앞서다 보니 자연스레 시설입소 노인들에 대해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 번씩 터져 나오는 노인 학대에 대한 소식들은 요양 보호시설을 알아보고 있는 이들에게 적잖은 갈등을 겪게 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혹시라도 내 부모님 모시려는 곳이 저런 곳이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들로 인해 가고자 하는 또는 보내드리고자 하는 요양 보호시설에 대해 정보를 얻으려고 하거나 어디 연결된 연줄을 찾기 위해 애를 먹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니 나이 든 부모님을 요양 보호시설에 맡기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끝까지 집에서 모시는 것이 옳은지를 놓고 고민 끝에 답을 찾지 못해 내게 물어오는 경우도 많다.


짧은 소견이지만 이런 경우 무엇이 옳다 그르다 말하는 것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본다.

시대가 대가족을 이루고 살던 때처럼 절대적 효를 중시하는 시대도 아니고 무엇보다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거나 가족 구성원들끼리의 갈등과도 직면하는 것이기도 해서 ‘가슴으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데 머리로는 자꾸 그게 맞다 하는’ 혼란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섣불리 조언을 한다는 것은 자칫 효를 핑계로 가정의 파탄이 생기게 되거나 또는 가정을 핑계로 병든 부모를 외면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는 만큼 당사자의 처지가 아닌 제삼자의 입장으로서는 여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름의 조언을 해준다면 집에서 모시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솔선수범할 것과 요양 보호시설에 맡기게 된다면 자주 찾아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집에서 모시는 경우 자신은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간병을 소홀히 하면서 다른 가족들의 희생만을 강요한다면 필시 가정 내 불화가 생기게 되기 마련이고 이는 자칫 가족파괴의 형태로도 변질될 수 있으므로 그 폐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누구보다 자신의 솔선수범하는 희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요양 보호시설에 위탁하는 경우는 얼마만큼 자주 찾아뵙느냐에 따라 당사자에 대한 처우가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다 돌아가신 분들과 달리 요양 보호시설에 오래도록 있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수습하다 보면 고인의 생전에 가족들이 고인을 자주 찾아뵈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표가 난다.

아무래도 가족들이 자주 찾아뵌 경우라면 시설 쪽에서도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되기 마련으로 처음에는 효심 경쟁이라도 하듯 매일같이 찾아와 극성을 부리다가도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면서 점차 그 빈도가 줄어들기 시작해 급기야 명절 때나 어쩌다 한 번 생각이 날 때 찾아뵙는 정도가 되고 나면 시설 쪽에서도 손이 덜 가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여서 간병의 손길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자주 찾아왔던 이들의 마지막 모습에 비해 드문드문 또는 거의 찾지 않다가 임종이 가까워져서 연락이 닿아 오게 된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사후 정리에서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것은 거동이 불편한 이들의 경우 더 그러하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가슴은 아니라고 하는데 머리로는 맞다’라는 번뇌 앞에서 효를 위한 맹목적 희생이 먼저인지 아니면 남아있는 이들이 살아가는 것이 먼저인지를 두고 선택을 강요당하는 현실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에 대한 책임과 관심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참고로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차이를 짧게 요약하자면 상주하는 의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주 의사가 있는 요양병원은 병원 내 진료도 가능하고 임종 시 사망진단서 발급이 바로 이뤄지지만 상주하는 의사가 없는 요양원은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외출을 해야 하며 임종 시 필히 공의의 검안과정을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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