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壽衣)를 입히는 남자

열여섯 번째 글: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by tank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라는 그림이 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부분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그림으로 자연적 조건의 영향에 따라 먹고 사는 것에 대한 풍요와 빈곤이 결정되던 옛날에는 풍년이 들었다면 다행이지만 흉년이 들어 끼니도 잇기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돼도 명절이나 제사 때는 있는 정성, 없는 정성을 다해 조상님을 기리기 위한 음식을 만들고 제사를 모시는 것이 의무이자 책임이기도 해서 어떻게 하면 없는 살림에도 조상님께 예를 갖춰 제사를 지낼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궁리 끝에 나온 것이 커다란 병풍이나 천 조각 위에 조상님의 위패(位牌)가 들어갈 자리만 비워두고 각종 제물을 올려놓은 그림을 그려 넣고 보관하다가 제사 때마다 꺼내어 사용하고 다시 보관해 두거나 어려운 이웃들끼리 돌려가며 쓰기도 했던 이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는 지역이나 가문에 따라 상차림을 그린 그림의 구성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도 하다.

책임이자 의무라고는 하지만 살아있는 가족들의 궁핍한 생활을 면하지 못하면서도 돌아가신 조상들에게까지 효(孝)가 유난히 강요되던 그 시절에 자손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생겨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이 그림은 형편이 어려웠던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효율적인 것이기도 해서 가난한 이들뿐만 아니라 양반가에서도 활용이 되기도 했는데 주로 신줏단지를 모셔놓은 사당에 이 그림을 두고 아침, 저녁으로 문안을 드렸다고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근래에 들어 이 사라진 풍습이 약간의 변형을 거쳐 다시 그 형태를 드러냈다는 것인데,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의 본래 쓰임이 굶기를 밥 먹듯 하더라도 조상에 대한 예(禮)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현대판으로 변형된 감모여재도는 불필요한 허례허식에 대해 민족 특유의 해학과 풍자가 곁들여진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그 변형된 모습을 보면 요즘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로 제사상 위에 놓인 접시에 음식을 놓는 대신 음식 사진이나 음식의 이름을 써넣은 종이로 대체하거나 그 음식을 장만하는데 드는 만큼의 현금을 올려두는 것인데 흔히 말하는 명절증후군을 최소화하고 친분을 도모하며 화기애애하게 명절을 보낼 수 있는 대안으로 풍자화되기도 한 이 현대판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진화를 거듭해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T.V만 틀면 병풍까지 갖춰진 제사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원래 제사의 본질은 돌아가신 분의 기일에 맞춰 평소보다 조금 더 넉넉히 음식을 준비해서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 마시며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형편이 닿으면 닿는 대로, 어려우면 또 그만한 대로 이웃과 함께 정을 나누며 돌아가신 이와의 기억을 나누고 그를 위해 영면이나 명복을 빌어주는 것으로 충분히 그 역할을 다했던 제사의 본질이 타락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예(禮)”의 형식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본래 “예(禮)”라고 하는 게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으로 시작한 것이 조금씩 형식에 얽매이기 시작하면서 “감 놔라. 배 놔라.”를 넘어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하는 것이 옳다.”라는 훈수와 함께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의견들이 보태지면서 조금씩 훼손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일례를 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차례상의 변화가 그렇다.

말 그대로 처음 시작할 때는 예를 갖춰 차를 따라 올리는 것이 다였다고 하던 것이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너도나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차리는 것이 제대로 된 예를 갖추는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인데 이는 점차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권세 있는 자와 종속되는 자에 따라 그 형식과 방법에 차이를 만들게 되고 심지어는 제사 횟수나 제사음식 양의 많고 적음으로 가문의 세(勢)를 과시하는 수단으로도 쓰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산업사회의 발달에 따른 핵가족화 이후 근래에 이르기까지 그럭저럭 유지되어 오기는 했으나 바쁘게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해서 급기야는 제사 문제로 인한 폐해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었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죽은 이들을 우선시하는 관점에 맞춰 예를 갖추려는 이들과 살아있는 이들의 관점에 맞춰 예를 갖추려는 이들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되자 유학(儒學)을 관장하는 성균관에서조차 명절 때마다 간소화된 제상 차림과 차례를 지내는 방법 등에 대한 의견을 내놓기도 하고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형식에 치우친 “예(禮)”보다 조상의 덕을 기리는 마음이 우선임을 강조하여 조금씩이라도 제사의 폐해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충분하다면 그래서 가족 누구도 불평불만 없이 동참할 수 있다면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같이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나누며 서로 간의 우애를 다지는 것은 우리의 오랜 전통문화이긴 하지만 “진짜로 조상 복 받은 사람들은 명절 때 해외로 여행을 떠나고 조상 복이라곤 지지리도 없는 사람들이 조상을 위해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제사를 모신다고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다 상처만 남게 된다.”는 자조가 정곡을 찌를 만큼 가족 구성원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는 변화된 시대에서는 형식에 치우치기보다 무엇보다 올바른 제사의 방향을 짚어보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지혜가 새삼 필요하다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수의(壽衣)를 입히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