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번째 글: 정책유감
“한 치 앞을 못 보는 것이 사람 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일을 위해 그리고 조금 더 먼 미래를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맞춰 일을 진행하지만 사람 일이 늘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어서 때때로 계획에 대한 수정을 거치거나 좌절을 겪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어서 국가 공공의 정책에서도 많은 시행착오와 판단의 오류를 볼 수 있다.
그중 한두 가지를 꼽아 보자면 산아제한(産兒制限) 정책과 화장문화(火葬文化)의 정착을 위한 정책을 들 수 있겠다.
젊은 세대들에겐 안 그래도 급격한 출생률의 감소로 인한 인구절벽과 함께 급속한 노령화가 국가의 존속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판에 무슨 뚱딴지같은 산아제한(産兒制限) 정책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산아제한(産兒制限) 정책은 국가의 장려정책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흔히 말하는 베이비붐 시대를 넘어 7.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던 인구증가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이라거나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등의 표어가 동네 골목골목마다 붙어있을 정도로 심각하게 여겨졌던 문제로 심지어는 아이를 많이 낳은 사람들을 향해 무지의 소산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그에 대한 대책으로 앞다투어 각종 지원안을 선심 쓰듯 내놓으며 출산을 장려하고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혜택을 더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절벽을 마주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말이다.
공원묘지와 봉안시설의 정비 확충을 통해 무분별한 묘지조성으로 인한 국토의 황폐화를 막고자 했던 정책들 또한 그렇다.
늘어나는 인구로 인한 주택 수요에 대한 공급을 걱정하며 “산 사람이 살 땅도 부족한데 죽은 이들을 위한 묘지를 계속 만들다 보면 언젠가는 전 국토가 묘지가 될 수도 있으니 지금이라도 매장문화를 바꿔야 한다.” 며 화장을 통한 장례문화의 개선을 위해 대대적으로 홍보한 결과 처음에는 화장(火葬)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 점차적인 인식개선을 통해 근래에 이르러서는 전체 사망자 수의 90%에 가까운 정도가 화장(火葬)을 통해 장례를 치른다고 하니 수치로 보면 상당한 성과를 이루게 된 셈이나 정작 화장문화(火葬文化)가 정착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봉안시설의 문제이다.
환경적인 문제로 보면 매장을 하는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봉분을 쌓았던 흙도 영구(靈柩-시신을 모신 관)도 시신도 자연스럽게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라면 화장 후 유해를 담은 봉안함이나 그 봉안함을 안치하는 봉안당 시설은 영구적인 시설로 인위적인 파괴가 아니고는 다시 원형의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물론 당시의 상황으로써는 최선의 정책이었을 수도 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한정된 국토와 자원으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증가와 묘지 면적의 확대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을 때 산아제한과 장례문화의 변화 외에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불과 한 세대 만에 출산율의 감소로 인구절벽을 맞고 묘지를 줄이기 위해 만든 봉안당 시설이 새로운 환경문제로 지적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