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壽衣)를 입히는 남자

스물여섯 번째 글: 할 수 있다면

by tank


가끔 유족들 가운데 염습과정에 함께 하고 싶다고 요청해 오는 경우가 있다.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손길 한 번, 마음 한 번 더 보태려는 그 마음을 알기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염습 준비과정에서부터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다.

유족이 고인의 옷을 갈아입히고 씻고 닦아드리는 과정 또한 고인과 남아있는 이들과의 교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유족이 왜 염습을 함께 하게 하느냐고 유족은 그냥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이 도리라며 반대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드리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다는 것은 내가 몸소 겪은 과정이기도 하다.


어머니께서 선종하셨을 때의 일이다.

당시는 나도 장례 쪽에 관계를 맺고 있던 때여서 처음부터 함께 하고자 했으나 자신들이 알아서 잘 모실 테니 상주님은 가만히 있으라는 만류에 밀려 기다리다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안치실에 들어섰을 때의 당혹감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도와주겠다고 나선 이들의 헌신적인 모습은 간데없고 구경꾼처럼 멀뚱히 서서 바라보는 가운데 생판 안면도 없는 장의사의 손길에 의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정리되는 것을 보고 분노가 차올라왔었다.

탈관염((脫棺殮)을 안 해봐서 할 줄 모른다는 이유였다.


모든 장례가 끝난 다음 그들에게 “왜 그랬느냐? 당신들이 안 되면 안 된다고 나한테 미리 말이라도 했으면 나라도 나섰을 것 아니냐?”며 항의를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을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여태 마음의 상처로만 남아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나뿐 아니라 장례업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해서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기보다 자신들의 손으로 돌아가신 분의 마무리를 해드리는 경우가 많다.


내 손으로 보내드리는 것이 손길 한 번, 마음 한 번 더할 수 있기도 하지만 돌아가신 분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드리고픈 도리 때문이기도 하다.


한 번은 같이 염을 하는 자매의 어머니를 함께 보내드린 적이 있다.

나와 같이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 진심인 것을 서로 알기에 내게 부탁을 해왔으므로 흔쾌히 그렇게 해드리겠다고 하고 장례를 진행하면서 모녀간이라 조금은 감정에 휩싸여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염려와는 달리 차분하고 침착하게 염을 하고 입관절차를 끝낸 다음에야 비로소 눈물을 보이는 자매를 보고 그의 딸이 나를 향해 물어왔다.


“할머니 염을 꼭 우리 엄마가 해야 했느냐?”라고 다소 원망 섞인 눈길로 혹시라도 그 자매가 받을 감정적 동요는 생각해보지 않았느냐는 호전적인 질문에 그렇게 답을 했었다.


“염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라도 자기 가족들은 자신의 손으로 보내드리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손으로 보내드리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로 남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우리 따님 되시는 분의 엄마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할머니를 직접 염해서 보내드렸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원망으로 바라보던 눈길이 다소 부드러워진 것은 모든 장례절차가 다 끝난 후였다.


“내 손으로 보내드릴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라고 회고하는 자매의 모습에 딸은 조금이나마 그 심경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고인과의 마지막 인사도 돌아가신 모습을 보기가 겁이 나서 외면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장례과정에 관계된 모든 것들을 터부시 하기도 하는 마당에 자식 된 도리로 마지막 가시는 길에 손을 보태어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염습에 함께 임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절로 마음이 겸허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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