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글: 명당(明堂) 이야기
매장(埋葬)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 묘의 터를 잡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산의 형세와 땅의 기운, 그리고 물의 흐름까지 두루 살펴 길흉(吉凶)을 따지는 것은 물론 그 터가 자신의 가문에 미치게 될 영향까지 염두에 두고 장사(葬事)를 지내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는 일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과 후대에 대한 발복(發福)의 염원을 지닌 것이기도 해서 세도가들뿐 아니라 일반 평민들까지도 명당에 대한 기대감은 큰 관심사였다.
더 나아가 터를 잡은 후 장사를 지낼 때는 돌아가신 이의 사주를 따져 시간을 언제로 할 것인지 또 관(棺)을 어느 방향으로 보이게 놓을 것인지 하는 부분들까지 세밀히 따져 소홀함이 없도록 했는데 그 이면에는 혹시라도 ‘묘를 잘못 써서 자손들에게 해를 끼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세심한 배려는 물론 가문의 부흥을 바라는 소망도 담기기 마련이다.
여기에 이야기가 조금 보태지면 ‘어느 곳에 묘를 쓴 덕에 왕이 나왔다.’ 또는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린다.’ 하는 사족들이 붙게 되는데 이런 명당에 관한 이야기들은 역사를 전해 내려오는 설화집이나 근, 현대사의 뒷이야기들에도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하고 지금도 가끔 T.V나 인터넷 매체들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그렇다면 명당이란 도대체 어떤 곳을 명당이라고 해야 할까?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방위를 봐야 하고 수맥이 어떤지 또는 땅의 질이 어떤지를 따져야 하는 만큼 풍수에 대해서 훤해야 하고 더불어 사주와 역학까지 꿰뚫고 있는 전문가가 아닌 일개 범부(凡夫)에 불과한 문외한(門外漢) 주제에 명당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어불성설(語不成說)이기도 하지만 나름의 살아온 경험치에 따르면 볕 잘 들고 포근함을 주는 땅이 바로 명당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무작정 볕 잘 들고 포근함을 안겨주는 땅이 명당이라고 하니 어떤 이들은 내게 무지렁이의 소치(所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공원묘지나 공동묘지의 조성된 형태를 놓고 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시립이나 사설 공원묘지 그리고 시대적 여건에 따라 자연적으로 조성된 공동묘지들을 살펴보면 실제로 일조량이 풍부하기도 하고 아늑한 느낌을 받는 곳이 많다.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시립이나 사설 공원묘지의 경우 전문가들을 동원해 풍수에 따라 좋은 자리를 찾아 터를 조성한다고 하는데 그 이전에 조성된 일반 공동묘지 또한 평안한 곳에서의 영면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길지(吉地)를 찾아 시작된 곳이 많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명당의 기본조건은 충분히 갖춘 셈이지 않은가 말이다.
명당에 대한 기원이 어디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복신앙(祈福信仰)의 내재로 볼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손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은 것이어서 묫자리 하나를 쓰더라도 혹여나 후손들에게 해가 되지 않고 복이 넘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세심한 배려 끝에 더 좋은 땅, 더 좋은 기운을 찾다 보니 풍수지리에 익숙해지게 되고 그렇게 고르고 고른 터가 명당이 되더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명당이라고 해서 그 후손들이 다 잘되고 복이 넘쳐나는 것은 아니어서 사람에 따라 길흉화복을 달리하기 마련인데 길, 흉사를 두고 묘를 잘 써서 복을 받았느니, 또는 묘를 잘못 써서 화(禍)를 입었니 하고 한 마디씩 보태다 보니 정작 그 과정에 있어 어떤 수고와 노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찰고(察考) 없이 결과만 보게 되는 편견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명성을 얻게 되고 아무 수고도 하지 않았는데 부자가 되는 예는 없다.
간혹 선대의 부와 명예를 물려받아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도 그것을 유지하려는 꾸준한 노력 없이는 당대에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명당에 대해 터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업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천하제일의 권력과 무한한 재력으로 자손 대대의 부귀영화를 위해 이름난 땅을 쫓아다니며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내 땅’이라고 좋은 땅 다 차지해 능(陵) 같은 묘를 짓고도 사람 구실을 못하고 사는 것보다 소박한 모습이더라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분별에 따른 행위의 결과로 명당의 가치가 결정되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근래에는 화장(火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져서 2024년 말 기준으로 화장률이 전체 장례의 90%에 이른다고 한다.
그에 따라 매장이 주를 이루던 때와 달리 자연스럽게 명당론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들도 잦아들게 되었는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