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글: 상가(喪家)에서 알아두면 좋은 것들
공수(拱手) 법
케케묵은 논란이지만 명확히 아는 경우가 드물어서 종종 절을 올릴 때 왼손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 맞다 오른손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 맞다 하고 소소한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아예 두 손을 벌려 절을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하나의 원칙만 기억해 두면 평생 잊지 않는 방법이 있다.
바로 남좌여우(男左女右)의 원칙이다.
풀이하자면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 위로 올리고 여자는 오른손을 왼손 위로 올린다는 말인데 흔히 잔칫날이나 명절 같은 경사스러운 일에 쓰는 공수법이다.
반대로 상갓집을 찾아 인사할 때처럼 흉사(凶事)의 경우에는 남자는 오른손이 위로 여자는 왼손이 위로 오게 해서 절을 한다.
참고로 덧붙이면 고인을 염할 때도 이 방법을 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남아있는 이들에게는 흉사지만 고인에게는 세상의 모든 수고를 내려놓고 평안히 가시는 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아있는 이들과 반대로 길사(吉事)의 공수를 한다.
삼우제(三虞祭)
사람들이 혼동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삼우제란 말이다.
어떤 이들은 삼오제(三五祭)라고도 하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사모제(思慕祭)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단순히 여기까지만 알고 있으면 좋은데 굳이 해석을 붙여 삼오제는 삼오는 십오 해서 열다섯 번째 되는 날에 제를 지내는 것이 삼오제라고 하는 주장을 내세우는 이도 있고 돌아가신 분을 사모하는 마음이 커서 지내는 제사니 사모제(思慕祭)가 맞다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으니 문제가 된다.
워낙 우리 정서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에 익숙한지라 처음엔 그런 사람도 있겠거니 하고 고개를 돌리기도 하지만 삼우제를 삼오제 또는 사모제로 잘못 인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또 그것이 맞다고 여기는 경우도 생기곤 해서 이왕이면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쓴다.
바른 표현을 하자면 삼우제가 맞다.
매장을 하든지 화장 후 봉안당 안치를 하든지 해서 고인을 모셔두고 온 첫날을 초우라고 하고 둘째 날을 재우 셋째 날을 삼우라고 하는데 이때의 ‘우’ 자는 ‘헤아릴 우(虞)’자를 쓴다.
다른 해석으로는 ‘쉬다’ ‘편안하다’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데 그 속뜻은 이렇다.
지금은 화장이 보편화되어 화장 후 봉안당에 안치하는 것으로 장례절차가 간소화되기도 했으나 매장이 주를 이루던 시절에는 하루 만에 봉분을 다 쌓아 올리고 때를 입혀 완성하는 것이 어려웠으므로 첫날 매장 후 땅을 다진 다음 이튿날에 봉분을 올리고 때를 입히고 여타의 것들이 정리되고 나면 사흘째 되는 날 제대로 예를 갖추어 돌아가신 분께 인사를 드리는 의식으로 묏자리를 살펴 헤아리는 것에서 ‘헤아릴 우’ 자를 써 삼우제라고 하였고 ‘편안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는 고인이 돌아가신 후 복잡한 장례절차를 거쳐 안장이나 안치 후 ‘비로소 내가 편히 쉴 곳을 찾았다 ‘는 고인의 관점에서 보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이들이라면 ’ 삼우‘ 또는 ’ 삼우제‘에 대해서 헛갈려하는 이들에게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헌화(獻花)
종교적 이유 또는 상가의 사정으로 인해 빈소에 과일 등의 제물을 아예 올리지 않거나 제물을 올린 경우라도 조문객의 입장을 고려해 국화를 준비해 헌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헌화의 방법에 대해서도 견해차가 나타나는데 어떤 이들은 ‘꽃의 방향이 고인의 영정을 향해야 한다.’ 하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다. 영정 주변과 제단을 장식하는 꽃의 방향과 같이 꽃이 바깥으로 보이게 놓아야 한다.’라고 의견을 내세우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논쟁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헌화한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놓느냐에 따라 뒷사람들 대부분이 같은 방향을 따라 헌화를 한다는 것이다.
첫 헌화가 꽃의 방향이 영정 쪽이면 뒷사람들도 우르르 영정 쪽으로 놓고 첫 헌화가 바깥 방향이면 뒷사람들도 그렇게 따라간다는 것이다.
더러 소신(?) 있는 이들은 ‘모두가 “예”할 때 혼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해 자신의 뜻대로 헌화를 하기도 하는데 사실 별 의미도 없는 일들로 갑론을박이 많아지다 보니 급기야 일부 장례식장에서는 아예 헌화용 꽃을 세워놓을 수 있도록 조치해 놓은 곳도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어떤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문제를 놓고 오랜 경험을 가진 이들이 모여 의견을 나눈 결과는 의외로 단순하다.
“이도 저도 다 맞다.”는 것이다.
고인에게 꽃의 향기를 전하기 위해 꽃봉오리를 영정을 향해 놓는 것도 고인에게 꽃을 안겨 드리기 위해 꽃대가 영정을 향하도록 놓는 것도 고인을 애도하는 마음이 먼저이지 형식이 먼저는 아니기 때문이다.
영정을 향해 술잔을 올릴 때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시계방향인 오른쪽으로 술잔을 돌리나 드물지 않게 시계 반대 방향인 왼쪽으로 돌리는 이들도 있게 마련인데 이를 두고도 어떤 이는 술잔을 오른쪽으로 돌린 후 올리는 것이 맞다 하고 어떤 이는 왼쪽으로 돌린 후 올리는 것이 맞다 하면서 서로의 예(禮)에 대한 지식을 앞세우며 언성을 높이기도 하는데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아니면 어느 쪽으로도 돌리지 않고 바로 올려 드리든 자신의 선택에 따르면 된다.
‘나와 조금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고집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탓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소한 것들에 대한 매달려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가 말이다.
호상(好喪)
사전적 의미를 따지면 복을 누리며 장수한 사람의 상례를 일컬어 호상이라고 한다.
이 경우 조문객들이 위로의 말이라며 상주들에게 “그만하면 호상이다.” 라거나 “고인이 복이 많으신 분이시다.”라는 인사를 하기도 하고 더러는 상주도 인사에 대한 답례로 ‘돌아가신 분이 큰 고생 없이 돌아가셨다’며 호상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도 하는데 이는 조문객이나 상주들이나 조심해서 선택해야 할 말이기도 하다.
우리의 전통정서상 상(喪)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죽음에 대한 슬픔을 나타내는 표현인데 그 앞에 괜찮다는 의미의 좋을 호(好) 자를 붙여 호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자칫 “잘 죽었다.”라고 잘못 받아들이는 경우도 생기는 법이어서 위로를 하려다 오히려 감정이 상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딱히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차라리 아무 말 없이 그냥 조용히 손을 한 번 잡아주거나 하고 물러 나오는 것이 오히려 낫다.
침묵은 때때로 그 어떤 표현보다 더 많은 감정적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장례를 꼭 슬픔 속에서만 치러야 하느냐며 유언으로 자신이 죽으면 잔치를 해달라는 이들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이고 나아가 임종 전 마지막 잔치를 하고 떠나겠다는 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상례(喪禮)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 변화에는 아직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빈소에서의 예절에 대하여
. 종교의식이 행해질 때
장례식장의 빈소들을 살펴보면 고인 또는 유족들의 종교에 따라 제단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기독교로 통칭되는 가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불교나 유교 기타 여타의 종교에 따라 제단에 제물을 올리거나 아예 아무것도 올리지 않기도 하고 혼백을 놓거나 생략하는가 하면 기도를 하거나 경을 외기도 하고 절을 하거나 절을 하지 않고 목례만 하는 등등의 차이가 나타난다.
어떤 종교이든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남아있는 유족들에 대한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것은 같아서 대부분 진중한 분위기로 의식에 참여하게 되지만 가끔은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서로 이웃해 있는 빈소에서 종교가 다른 경우 상대 빈소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의식을 행할 때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상대의 종교에 대한 비난이나 자신들이 세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부러 목소리를 키우는 경우가 그렇고 의식을 행하는 것을 알고도 접객실에서 술김을 핑계로 큰소리를 내며 떠들고 소란을 피우는 행태가 그렇다.
이런 경우 장례지도사나 유족이 의식을 위해 조금만 목소리를 낮추어 달라는 정중한 부탁을 하면 대다수는 흔쾌히 분위기에 동참해 주기 마련인데 간혹 한두 사람 정도가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든 장수처럼 상가의 분위기나 정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용감 무식(?)한 객기를 부려 유족과 조문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상가(喪家)는 애도와 위로가 이어지는 공간이다.
자기 자랑과 세의 크기를 과시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안다.
경조사가 아니고는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다 보니 그간의 안부를 묻는 일도 있을 것이고 과거에 있었던 감정적 갈등이 생겨 작은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슬픔에 빠진 유족들과 고인을 위해 문상을 왔다면 진중한 자세로 고인과 유족에 대한 예를 갖추도록 하고 혹 자신의 행동이나 언어가 유족 또는 조문객들에게 실례를 범하는 경우가 없도록 스스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할 일이다.
. 조문시간
상가(喪家)에서 밤새도록 유족들과 함께 있어 주는 것을 덕목으로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친하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밤을 밝혀 상갓집에서 유족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심심풀이로 푼돈을 놓고 동양화나 서양화 감상을 하거나 밤새도록 술잔을 나누는 것이 당연히 여겨지던 시대였지만 세상이 점점 빠르게 돌아가고 너, 나 할 것 없이 바쁜 지금은 너무 이른 시간이나 너무 늦은 시간에 조문을 하는 일이 실례로 인식될 만큼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수로 자리를 잡았다.
늘 하는 말이지만 유족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힘들이는 일 없이 보여도 조문객을 맞이하고 안내하는 일 외에도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장례를 치르는 일에 대한 긴장으로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장례진행자가 옆에 있어도 본인들만의 역할이 있다 보니 장례를 치를 때는 괜찮은 듯 보여도 막상 장례가 끝나고 나면 긴장이 풀어지면서 며칠씩 앓게 되는 경우도 많다.
유족들을 위해 조금 더 오랜 시간 함께 있어 주겠다는 조문객의 성의가 자칫 유족들의 쉼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유족들의 휴식을 위해서라도 너무 이르거나 늦지 않게 적절한 시간에 조문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 운구할 때
관을 들고 움직이기 위해 만드는 매듭은 보통 여섯 매듭을 짓는다.
양옆으로 세 사람씩 서서 한 매듭씩 잡고 운구를 하게 되는데 고인의 체구가 장대하거나 매장을 하기 위해 평상시보다 두껍고 무거운 관을 쓰게 되는 경우는 여덟 매듭을 지어 힘을 분배하기도 한다.
문제는 운구를 도와줄 사람을 구하는 일이 힘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핵가족화가 보편적이고 각자 먹고살기 바쁜 일상에 장지까지 함께 따라가기가 힘들어지다 보니 발인하는 날 아침까지도 운구를 도와줄 사람을 정하지 못한 채 고민을 하기도 하는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예전에는 유족은 무조건 관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으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겨 운구할 사람이 없는 경우 가족이 운구하는 일도 많아졌고 그만한 가족 구성이 되지 않는다면 장례식장 직원들이나 장의차를 운전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작 걱정이 되는 것은 장지로 가는 길에 장의차 앞에 선도차를 세우는 경우이다.
고인을 위한 장례가 남이 보는 시선들을 통해 고인보다 유족들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늘어나다 보니 고인의 영정과 관만 모시고 앞서는 리무진이나 관은 버스에 모시고 고인의 영정만 앞세운 근조 리본을 단 조금은 삐까뻔쩍한 차량을 선두에 세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는 장례를 진행하는 입장에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다.
할 수 있다면 더 좋고 화려한 형태로 고인의 마지막을 기리려 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에 관심이 치중되다 보니 자칫 불상사가 생기는 경우다.
운구하는 이들이나 선도차를 운행하는 이들은 대부분 상주의 친구들이나 동료들 또는 유족 중의 한 사람으로 장례 기간 중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되는데 특히나 선도차를 운행하기로 한 사람이라면 깊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 전날 금주와 충분한 휴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례지도사로 장의차에 동승하여 앞에 선 선도차의 운행 모습을 보면 때때로 아찔하다 싶을 때가 많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달라고 사전에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늦은 밤 심지어는 새벽까지 조문객들과 어울리다가 거의 뜬 눈으로 새우다시피 한 채로 핸들을 잡는 경우가 그렇다.
졸음으로 인한 속도 감각이 둔해지다 보니 뒤따르는 장의차의 진로를 방해하게 되거나 급정거나 차선 이탈로 비틀거리며 다른 차량들의 흐름을 방해하는 아찔한 모습을 보게 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큰 사고를 유발하는 경우로 이어질 수도 있어 뒤따르는 내내 마음을 놓지 못하는 긴장감을 조성하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선도차를 세우는 것을 지양하도록 안내한다.
부득이 선도차를 운행해야 한다면 자동차 전용도로 같은 곳에서는 자칫 사고라도 나면 대형사고가 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충분한 휴식을 전제로 하길 바란다.
기껏 좋은 마음으로 장지 수행에 나섰다가 불미스러운 사고로 인해 세상에 이별을 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