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세상을 조금 살 만하게 만드는 한마디

보라눈의 깊은 방

by 보라눈

나는 민원 전화를 잘 넣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인 내 친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구청이건 교육청이건 어떤 업체건

부조리함을 느끼면 담당자를 찾아

전화를 걸고 항의한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지 생각하며

갈등 상황을 피해 가고자 하는 성격의 나는

그 친구가 늘 신기했고 때론 부러웠다.

그러면서 그 친구에게

“넌 정치해야 하는데”

하며 농을 던지곤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잘 거는 건

민원 전화만이 아니었다.

칭찬 전화도 잘 걸었다.


언젠가는 은행 창구 직원이 너무 친절해서

나중에 본점에 전화를 걸어

그 직원에게 표창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그 직원은

정말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프레즐 집.


친구는 프레즐을 좋아해서

종종 그 유명한 체인의 프레즐을 사 먹곤 했는데

우리 집 근처에서 프레즐을 먹어보고는 홀딱 반했다.


같은 업체이긴 하지만

사장의 솜씨나 보관하는 기술에 따라

프레즐은 지점마다 맛이 조금씩 달랐다.

구운 지 오래된 듯 딱딱한 곳도 많았는데

여기는 정말 폭신하고 쫄깃하고 맛있다는 거다.

실제로 이 지점은

프레즐이 맛있다고 소문난 곳이기도 했다.


친구는 집에 돌아가

그 가게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사장님께 너무 맛있었다고, 정말 맛있다고

칭찬을 한참 했다고.


이제 전화를 이만 끊어야 할 것 같은데

사장님은 친구의 말을 듣는 게 너무 기분 좋았는지

쉽게 전화를 끊지 못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친구의 그 말을 들으니

내 경험 하나가 떠올랐다.


엄마가 운영하시는 푸드코트에

잠시 알바를 하러 다닌 적이 있었다.


점심시간쯤 되면 손님이 너무 많아서

퇴식구에는 그릇이 쌓여 가고

당장 쓸 그릇도 없어서 식기세척기도 못 돌리고

급하니까 일단 필요한 그릇 하나하나

손설거지해서 쓰던 정신없는 때였다.


힘들어서 정신도 살짝 나가려고 할 때

누군가가 해주던 칭찬.


“정말 너무 맛있어요!”

“먹어 본 쫄면 중에 제일 맛있어요.

이거 먹으려고 와요.”


앗, 쫄면 양념장은 내가 만들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피로회복 링거를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순간 온몸의 피로가 싹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힘이

싹 자리 잡는 걸 느꼈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불편함에는 민감해서 비교적 잘 드러내지만

만족은 마음속으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누군가의 친절, 누군가의 노동을

알아보고 표현해 주는 일은

정말 흔한 일이 아니다.


맛있었다는 말 한마디.

친절했다는 말 한마디.

수고를 알아봐 주는 짧은 표현 하나.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아무리 감탄을 하며 먹었어도

그 집을 나올 때 칭찬의 한마디를

한 적은 별로 없었다.

표현을 안 하는 큰 이유 같은 건 없다.

그저 조금 쑥스러워서다.


제때 건네지는 작은 인정 한마디에

사람은 버티는 힘을 얻고,

세상은 그런 말들 덕분에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굴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나도 용기를 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