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눈의 깊은 방
나는 민원 전화를 잘 넣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인 내 친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구청이건 교육청이건 어떤 업체건
부조리함을 느끼면 담당자를 찾아
전화를 걸고 항의한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지 생각하며
갈등 상황을 피해 가고자 하는 성격의 나는
그 친구가 늘 신기했고 때론 부러웠다.
그러면서 그 친구에게
“넌 정치해야 하는데”
하며 농을 던지곤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잘 거는 건
민원 전화만이 아니었다.
칭찬 전화도 잘 걸었다.
언젠가는 은행 창구 직원이 너무 친절해서
나중에 본점에 전화를 걸어
그 직원에게 표창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그 직원은
정말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프레즐 집.
친구는 프레즐을 좋아해서
종종 그 유명한 체인의 프레즐을 사 먹곤 했는데
우리 집 근처에서 프레즐을 먹어보고는 홀딱 반했다.
같은 업체이긴 하지만
사장의 솜씨나 보관하는 기술에 따라
프레즐은 지점마다 맛이 조금씩 달랐다.
구운 지 오래된 듯 딱딱한 곳도 많았는데
여기는 정말 폭신하고 쫄깃하고 맛있다는 거다.
실제로 이 지점은
프레즐이 맛있다고 소문난 곳이기도 했다.
친구는 집에 돌아가
그 가게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사장님께 너무 맛있었다고, 정말 맛있다고
칭찬을 한참 했다고.
이제 전화를 이만 끊어야 할 것 같은데
사장님은 친구의 말을 듣는 게 너무 기분 좋았는지
쉽게 전화를 끊지 못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친구의 그 말을 들으니
내 경험 하나가 떠올랐다.
엄마가 운영하시는 푸드코트에
잠시 알바를 하러 다닌 적이 있었다.
점심시간쯤 되면 손님이 너무 많아서
퇴식구에는 그릇이 쌓여 가고
당장 쓸 그릇도 없어서 식기세척기도 못 돌리고
급하니까 일단 필요한 그릇 하나하나
손설거지해서 쓰던 정신없는 때였다.
힘들어서 정신도 살짝 나가려고 할 때
누군가가 해주던 칭찬.
“정말 너무 맛있어요!”
“먹어 본 쫄면 중에 제일 맛있어요.
이거 먹으려고 와요.”
앗, 쫄면 양념장은 내가 만들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피로회복 링거를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순간 온몸의 피로가 싹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힘이
싹 자리 잡는 걸 느꼈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불편함에는 민감해서 비교적 잘 드러내지만
만족은 마음속으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누군가의 친절, 누군가의 노동을
알아보고 표현해 주는 일은
정말 흔한 일이 아니다.
맛있었다는 말 한마디.
친절했다는 말 한마디.
수고를 알아봐 주는 짧은 표현 하나.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아무리 감탄을 하며 먹었어도
그 집을 나올 때 칭찬의 한마디를
한 적은 별로 없었다.
표현을 안 하는 큰 이유 같은 건 없다.
그저 조금 쑥스러워서다.
제때 건네지는 작은 인정 한마디에
사람은 버티는 힘을 얻고,
세상은 그런 말들 덕분에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굴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나도 용기를 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