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눈의 깊은 방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는 외할머니를 떠올려본다.
할머니 댁은 늘 정갈했다.
갖고 계신 물건은 적지 않았지만,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것들이 정확히 놓여 있었다.
그래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두 분만 사시던 집은 겨우 11평이었지만
결코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할머니는 살림의 모든 것에
정성을 들이시는 분이었다.
문갑 위뿐 아니라 그 위에 놓인
작은 장식물들의 먼지까지
물걸레로 하나하나 닦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건 내 공간, 내 물건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할머니는 시장도 늘 아침 일찍,
문을 열자마자 가셨다.
마감 떨이 시간에 주로 시장을 가는 나는
그게 늘 신기했다.
도대체 왜일까?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은 물건을 사려면 아침 일찍 시장 열자마자 가는 게 좋아.”
무조건 싸고 많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던 나는
그 말씀이 엄청난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할머니는 하나를 사더라도 퀄리티를 중시하셨고,
나는 가성비를 먼저 따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한 번은 할머니를 따라 대형마트에 간 적이 있다.
그때 할머니는 다리 힘이 많이 약해지셔서
휠체어 대신 카트에 몸을 기대며 장을 보셨다.
그 시간은 할머니의 운동 시간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가지 앞에서 카트를 멈추시고는
가장 색이 짙고 길이도 적당히 날씬한 가지 두 개를 신중히 고르셨다.
“둘이 먹으니까 두 개면 돼.”
수산 코너에서는
나라면 샀을 작은 갈치 여러 마리 대신
가격은 많이 비쌌지만 실하게 통통한 갈치 한 마리를 고르셨다.
“할아버지 조려 드릴 거야.”
그 모습과 그 한마디에는
할머니의 할아버지에 대한 존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할머니의 살림을 돌아보면
그 바탕에는 언제나 ‘존중’과 ‘정성’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책은 쓰지 않으셨지만,
할머니는 일상의 철학자셨다.
할머니를 뵐 때마다
할머니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그것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나는 여전히 마감 떨이 시간을 사랑하고,
같은 값이면 여러 개를 선호한다.
그래도 가끔은 물건 앞에서
‘할머니라면 뭘 고르셨을까?’ 하고
잠시 멈춰 서 보게 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의 집도
여전히 단정하겠지,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