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눈의 깊은 방
식구들이 먹을 빵을 사가지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적한 버스 안은 고요했고 난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아이들도 방학이고 간식이 없으면 안 돼..’
무릎 위의 빵봉투가 미끄러지지 않게 끌어안는 순간
‘언제까지 아이들이 내 곁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부모님과 26년을 살았다.
그리고 남편과 결혼한 지 올해로 26년째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남편과 같이 살 날이
부모님과 같이 살았던 시간의 길이를 역전할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평생 부모님과 같이 살 줄 알았다.
내가 크면 결혼할 거란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은 그런 상상보다는
당연히 내 곁에 계신 부모님이 현실로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부모님과 같이 사는 시간은 참 짧고 유한했다.
형제와 함께한 시간도 마찬가지다.
동생과는 스물세 해를 같이 살았는데,
이제 와 돌아보니 더 많은 추억을 쌓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내가 부모님과 지낸 시간이 짧았던 만큼,
내 아이들도 나와 같이 사는 시간이 길지는 않을 것이다.
내 눈엔 독립은 꿈도 못 꿀 것 같은 어린아이들로 보이지만
막상 결혼해도 합법인 성인들이지 않은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게 올라왔다.
지금 이렇게 4 식구가 같이 사는 것도 한때일 뿐이다.
난 분명 훗날 이 복작복작한 때를 그리워할 것이다.
살림할 게 많다고, 먹을 것 준비하는 것도 힘들다고,
나만의 시간이 갖고 싶다고 속으로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분명히 이때가 그리워질 것을 안다.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고
변하는 관계를 막을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사랑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주고
늘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는 걸 늘 염두에 두고 사는 것.
이게 다일 것이다.
사람은 그런 것 같다.
지금이 영원할 것 같다는 착각.
부모님과 함께 살 땐 부모님과의 시간이 영원할 것 같았고
아이들과 같이 살 땐 아이들과의 시간이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든 그 순간,
시간의 유한함을 절감하며
지금의 소중함에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