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눈의 깊은 방
집에서 식사할 때 내가 먹는 순서는 늘 마지막이다.
칼질 소리와 음식을 볶을 때 나는
냄비와 주걱의 마찰소리들이
조용해진 뒤에야
식탁에는 음식이 차려지고,
난 남편과 아이들을 부른다.
그들의 식사가 끝나면 그제서야 내 식사 시간이 온다.
내가 늘 나중에 먹는 이유가 있다.
첫번째, 음식이 모자라지 않은가 상황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양을 인원수에 맞춰 요리하더라도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다.
예상과 달리 식구들이 만든 양보다 더 많이 먹을 때가 바로 그 때인데
이럴 때를 대비하여 나는 일단 먹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음식이 남으면 난 그 음식을 먹으면 되고
남지 않으면 다른 걸 해서 먹으면 되니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
식사 시간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다.
난 엄청난 미식가는 아니지만 먹는 시간을 정말 즐긴다.
밥을 젓가락으로 세듯 몇 알씩 나눠 먹는데,
어르신들이 흔히 깨작깨작 복없이 먹는다고
싫어할 스타일이지만, 이게 나다.
소화기관이 약한 소음인이라 급히 먹으면 체하기도 하고
이렇게 먹어야 밥알 하나하나의 미묘한 맛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밥알을 하나 입안에 넣고 혀에 닿는 촉감과 살짝 달달한 전분의 맛을
느끼는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먹는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린다.
그런데 식구들과 같이 식사를 하면 이 시간이 방해를 받는 것이다.
식탁 상황을 보며 내가 일어나야 할 일이 분명히 생기기 때문에.
반찬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 일어나서 채워줘야 하고,
밥 좀 더 달라고, 물 좀 달라고..
중간 중간 리듬이 끊길 일이 꼭 생긴다.
식사 시간이 끝나 식구들의 필요가 모두 채워지고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한숨을 돌리고
나만의 호젓한 식탁을 맞이한다.
누군가의 수고로 우리집까지 와서,
나의 수고로 맛있는 요리로 변신한 음식을
한 젓가락 두 젓가락 음미하며 천천히 온전히 먹는 일은
매일 일어나는 나만의 작은 이벤트이다.
식구들이 적게 먹게 될까봐 배려하는 마음과
식사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싶은 내 욕구가 합해져
나는 오늘도 나중에 식사를 한다.
가장 조용해진 순간에, 가장 나다운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