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툰과 에세이 사이에서

보라눈의 깊은 방

by 보라눈

나는 툰을 그리는 사람이다.

웹툰과 인스타툰.


웹툰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재미로 그리고,

인스타툰은 나라는 사람의 일상과 생각을 표현하는 재미로 그린다.

요즘에는 에세이도 쓰고 있는데,

아마 에세이는 인스타툰과 더 가까운 결일 것이다.

그래서 에세이와 인스타툰은

자연스럽게 소재가 겹칠 수밖에 없다.


내겐 이미 툰이라는 표현의 도구가 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에세이를 쓰고 싶어 졌을까.


툰은 장점이 분명하다.

이야기를 매우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한다.

대신 독자의 상상력이 개입할 틈은 많지 않다.

화면 안에서 모든 것이 이미 재생되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다르다.

툰보다 느리게 읽히고, 비어 있는 공간이 많다.

그 여백 덕분에 오히려 더 생각하게 된다.

또 말풍선 안에 담기엔 길어서

정리해 두었던 문장들을

에세이에서는 끝까지 써 내려갈 수 있다.

그 덕분에 더 깊은 곳에 있는

내 마음까지 닿는다.


툰을 오래 그리다 보니

모든 이야기를 화면으로 재생하려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초보 에세이스트인 나는

‘보여주지 않고 남겨두는 일’,

즉 여백을 주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여백 덕분에

나 역시 생각이 깊어지고,

독자에게도 잠시 머물 수 있는

쉼표를 건넬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내게는 두 도구가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그래서 어느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생각의 파편들이 날아다니면,

나는 툰이든 에세이든

내가 가진 도구로 그것을 붙잡아

기록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같다.


아마도 붙잡아두지 않으면

내 시간이 그냥 흘러가 버릴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일기를 써도 될 일을

나는 왜 굳이 정리하고,

그림을 그리고,

세상에 내놓고 싶어 할까.


거창한 이유는 없다.

혼잣말보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 더 즐거운 것과 같은 이유다.

“나도 그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런 공감 속에서 우리는

그래도 같이 버텨보자는 힘을 얻지 않나.


그래서 내게 다른 사람의 글과 툰은

친구와 같은 의미다.

나 역시 독자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그 이유 하나면 충분하다.


지난주 올린 에세이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난히 많이 읽혔고,

라이킷과 팔로우를 남겨준 분들도 생겼다.

초보 에세이스트에게는

그 자체가 큰 응원이었다.


사실 나의 하루는 거의 비슷하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운동으로 아침을 깨우고,

아침을 먹고, 글을 쓰거나 툰을 그리고,

점심을 먹고, 오전 작업을 마무리하고,

집안일을 하고, 저녁을 준비하며

하루를 정리한다.


그래서 내게 에세이는

특별해서 쓰는 하루가 아니라,

써서 특별해지는 하루를 만들어 주는

아주 기특한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