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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by Jul 06. 2024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가장 맛있었던 아침식사

1st republic villa in Cesky Kromlov,2023

저는 여행을 계획할 때, 그 도시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으면 좋을지 정말 많이 알아보는 편입니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홍콩과 마카오를 예로 들면, 홍콩에서는 '정통 광동식 요리와 딤섬을 먹어봐야지' 마카오에서는 '마카오의 독특한 요리인 매캐니즈 요리를 먹어보는 게 좋겠다' 하는 식이죠.


그런 면에서, 사실 체스키 크룸로프에서는 특별히 기대한 음식은 없었습니다. 프라하를 방문할 예정이 있었기 때문이죠. 체스키 크룸로프와 프라하는 서로 다른 음식이 유명할 수도 있겠지만, 먼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 알기는 조금 어려웠습니다.


그런 점에서, 큰 기대가 없었던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의외로 가장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곳은 숙소에서의 아침 식사였습니다.





체스키 크룸로프의 돌바닥

체스키 크룸로프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보게 되는 정보가 있죠. 중세시대 모습을 간직한 이 마을의 도로는 전형적인 유럽 돌바닥이라 캐리어 바퀴가 남아나지 않았다는 경험담들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버스정류장 인근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사실 관광의 중심이 되는 체스키 크룸로프 광장과 걸어서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입니다. 체스키 크룸로프 자체가 워낙 작은 마을이기 때문이죠.


이 숙소는 부부로 보이는 두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한국인들도 제법 찾는지 간단한 한국어 안내 자료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방은 1층에 3개, 아마 2층에도 3개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숙소 내부도 유럽의 어지간한 호텔들보다 쾌적했습니다. 특히 유럽 관광지 호텔들은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서 사용하느라 수압이 약한 곳이 많은데, 한국 저희 집만큼 수압이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부분. 여행을 하다 보면 전반적으로 서유럽보다 동유럽 사람들의 표정이 더 무뚝뚝한 느낌이 드는데요, 이 곳도 다르지 않아 운영하는 두 분도 상당히 무표정합니다. 그런데 많은 짐 다 옮겨다 주고, (어설픈 영어로) 물어본 내용 다 대답해 주고, 관광지 안내도 사전에 도와주는 등 필요한 부분은 다 챙겨 줍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오히려 서유럽보다 동유럽에서 친절하다고 느낀 적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특히 상대방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방법으로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곳에서 1박을 한 덕분에 아름다운 체스키 크룸로프 마을의 야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건이 되신다면 프라하에서 당일치기로 방문하는 것 보다는 1박 하면서 체스키 성 외에도 에곤 쉴레 미술관과 이 야경을 보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목가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숙소의 아침.


아침 식사는 무려 10가지 메뉴 중 고를 수 있는데, 이렇게 한글로 된 메뉴판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에그 베네딕트와 스마젠카를 선택했습니다. 스마젠카는 체코 호밀빵을 사용한다고 해서 흥미가 생겼기 때문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골라 보았습니다. 식사 장소는 아침 식사시간 외에는 리셉션 장소로 사용됩니다. 저녁이나 밤에는 여기서 차나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고 해요.



먼저 고소한 빵과 잼이 나옵니다. 잼은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과 좀 다른 느낌인데요. 빵과 잼 모두 다 맛있어서 하나씩 집어 먹다 보니 어느새 다 먹었습니다.



음료는 과일 주스. 두 가지 과일을 같이 즉석에서 갈아서 가져다 줍니다. 안에서 바로바로 가는 소리가 들려요.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주스와 별도로 커피도 나옵니다.



모든 메뉴에 다 제공되는 것 같은 샐러드. 우리가 생각하는 샐러드와는 약간 느낌이 다른데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샐러드는 생 야채에 드레싱을 뿌리는 스타일인데 이 샐러드는 베리와 과일에 치즈와 (아마도) 꿀을 같이 얹었습니다. 사실 과일이 맛없지 않으면 실패하기 어려운 조합인데, 체코에서 먹었던 이런 베리류는 모두 맛이 좋았습니다.



무엇인지 궁금했던 스마젠카. 샌드위치와 비슷한 비주얼입니다. 피클을 넉넉히 올리고, 아래에는 계란과 치즈 등이 듬뿍 들어간 토스트가 있습니다. 양이 생각보다 많은 편입니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음식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재료 하나하나가 맛있어서 그런지 기대 이상으로 맛이 좋았습니다. 



아마 위에 피클을 넉넉하게 올리지 않았다면 맛이 약간 단조로웠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열을 가한 치즈의 고소하고 기름진 맛, 계란의 달달한 맛, 빵의 고소한 맛과 폭신한 식감 등등 여러 가지 맛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맛있는 샌드위치였습니다.



연어가 올라간 에그 베네딕트. 예상 가능한 맛이지만 맛있는 조합. 반숙 계란이 알맞게 올라가 있어 잘랐을 때 식욕이 더욱 올라갑니다.



사실 꽤 오래 전, 베니스에서 연어를 실패한 적이 있어서 내심 걱정했는데, 전혀 걱정할 필요 없는 훌륭한 맛이었습니다. 



후식으로는 꾸덕한 초코 브라우니까지.





여행지에서 만난 음식에 대해 글을 쓸 때,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음식은 과연 이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음식이었을까?'


그 의미가 독창적인 재료일 수도 있고, 셰프의 기술일 수도 있고, 문화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세 가지 모두 다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저만 한 것은 아닌지, 미슐랭 가이드에서도 별 3개의 기준을 '이 음식을 먹기 위해서만으로도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음식' 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사실 여행지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식당은 '이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음식' 은 아닙니다. 

물론 같은 메뉴라고 해도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분명 맛의 차이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대단히 다른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오늘 글의 소재로 쓴 에그 베네딕트는 한국에서 맛있는 에그 베네딕트 가게에서 먹던 것과 거의 비슷한 맛이었습니다. 한편, 스마젠카의 경우 빵이나 피클, 치즈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것과 조금씩 다른 맛이기 때문에 합쳐진 스마젠카 또한 다른 맛이 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크게 봐서 맛있는 샌드위치가 아닌가요? 라고 누군가 반문한다면 그 말 또한 맞는 말입니다. 아마 우리나라 광화문이나 강남 인근 브런치 맛집에서 이 음식을 접했다면, 정말 맛있다고 느끼기는 했겠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것 만큼 특별하게 느끼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식사가 제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이유는, 그것이 여행지에서의 식사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식당이 아닌, 마치 아는 사람의 집에서 식사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음식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고, 식사도 소박하지만 맛있었으며, 하루를 보낸 공간이 주는 안정감도 있었겠죠. 하나하나 쪼개서 분석해 볼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분명 숙박비에 이 조식 가격이 포함되어 있으니 저희가 대가를 지불한 것이지만, 그런 느낌보다는 아침 식사를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굳이 새삼스럽게 이 식사는 숙박에 포함된 옵션이라는 사실을 되뇌일 필요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이자 역사적인 카페들의 도시, 비엔나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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